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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문학노트] 올 휴가 땐 독서의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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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08 21:32:44 수정 : 2016-07-08 22: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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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나 추천도서 대신
고전에 흠뻑 취해보자
다시 읽어도 느낌 새롭고
세월 지나도 닳지 않는 가치
더 깊은 감동으로 가슴 채우길
국립중앙도서관이 매년 이맘때면 그러하듯 올해도 어김없이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100권을 선정해 발표했다. 지난해 7월부터 1년 동안 출간된 신간 중에서 고른 목록이라는데 어수선하고 편협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문학 인문학 사회과학 서적 출판사로 치자면 국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C출판사의 책은 100권 중에서 한 권도 찾아볼 수 없다. 단순한 우연일까. 관에서 정하는 목록이니 일정한 한계를 감안할 수밖에 없고 추천도서목록이라는 것 자체가 추천하는 이들의 취향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니 무어라 탓할 수 없는 건가.

금쪽 같은 휴가 기간에 읽을 만한 책을 고르는 만큼 신간 목록에만 의존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럴 때는 차라리 오래 밀쳐두었던 고전의 바다로 깊숙이 유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고전이란 말 그대로 세월의 검증을 거쳐 살아남은 것인 만큼 평소에는 시간이 없어 엄두가 나지 않았을지라도 휴가철을 맞아 한 번 작심하고 대면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학창시절이나 청년기에 읽었던 고전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보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세대마다 독후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예컨대 ‘닥터 지바고’의 경우 청년기에는 배경을 이룬 러시아혁명이 다가왔다면 중년에는 라라와 지바고의 가슴 아픈 ‘불륜’이 더 눈에 밟힐 수도 있고, 노년에 읽는다면 자연 풍광이 가슴 시리게 와닿을 수도 있을 터이다. 중남미문학을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의 ‘백년의 고독’은 어떠할까. 비 오는 날 차양 아래에서건, 안방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서건, 하염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푹 빠져 더윌랑은 애시당초 잊어버린 지 오래이게 만들 책이다.

‘백년의 고독’은 주지하다시피 라틴아메리카의 ‘창세기’이자 ‘묵시록’으로 일컬어지는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작(1982)이다. 사랑에 실패했거나 아예 사랑할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들이 비극적으로 죽어가고, 급기야 그들이 살던 ‘마콘도’라는 마을이 ‘고독의 허리케인’에 휩쓸려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이야기다.

엊그제 서재에서 찾다가 행방을 몰라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그 책은 젊은 시절에 읽고, 오래전 문학기행을 위해 콜롬비아 카르타헤나를 거점 삼아 카리브 해변을 달리던 시점에 읽었던 인상과는 또 다르게 다가왔다. 1대 부엔디아는 자신을 모욕한 동네 사람과 결투를 벌여 그의 목에 창을 꽂아 죽인다. 근친상간으로 인해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나올 거라는 예언에 겁을 먹은 아내가 신혼 초에 ‘두꺼운 쇠자물쇠로 잠그게 되어 있는 엉성한 돛베 바지’를 입고 자는 바람에 생긴 사달이었다. 부엔디아는 더 이상 그 마을에서 견디기 힘들어 아내와 그를 따르는 동네사람들과 더불어 새로운 땅을 찾아나서 깊은 숲속 늪지대에 ‘마콘도’를 건설한다. 이 고립된 마을에 집시들이 외부의 새로운 문명을 전달하는데 얼음을 처음 본 마콘도 사람들의 반응이 걸작이다. 아버지는 “저건 세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란다!”고 외치더니 성서에 서약하듯 얼음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이건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외친다. 놀란 아들은 얼음 위에 손을 얹더니 “펄펄 끓고 있어요!”라고 소리친다.

외부의 문명에 둔감하고 ‘근친상간’으로 상징되는 오래된 갇힌 역사를 반복하는 조국의 현실에 대한 마르케스의 안타까움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대목이었다. 그가 소설에 표제로 쓴 ‘고독’은 실존의 고독이기 이전에 막막한 현실에 대한 반어적 슬픔이 밴 표현이었을 터이다. 지난 시절에 읽었을 때는 ‘펄펄 끓는 얼음’이 매직리얼리즘을 상징하는 흥미로운 느낌으로만 스쳐갔다면 이번에 다시 읽을 때 눈에 찬 이 대목은 다른 생각의 갈래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누구나 다시 보면 조금씩 느낌이 달라질 터이다.

자신만의 고전 목록을 작성해 다시 보고 싶은 책이라면 새로운 느낌을 충전해 보고, 그동안 미루고 미뤄 왔던 책이라면 올여름에는 길게는 몇백년에 걸쳐 읽은 이들이 후회하지 않았다니 세월에 마모되지 않는 그 고전의 바다에 깊이 잠수해볼 일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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