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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의경제수첩] 지독한 위선, 낙하산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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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15 21:06:15 수정 : 2016-07-15 21: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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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이 구역을 장악하고 행동대장들에게 술집 영업부장 한자리씩 나눠주는, 뭐 그런 것인가.”

경제부처 장관을 지낸 K씨의 말은 거칠었다. 박근혜정부 초반 국책은행장 인사에 대해 “질이 아주 나쁜, 최악의 인사였다”고 혹평했다. “그 중요한 자리에, 깜냥도 안 되는 인사를 앉혔다”는 게 요지다. 대표적으로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을 지칭했다. 그는 “은행은 은행장 말 한마디로 모든 게 결정되는 곳인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인사를 하는지 깜짝 놀랐다”고 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들은 ‘낙하산’이다. 능력보다 연줄을 타고 내려앉은 혐의는 단단히 굳어졌다. 둘 모두 친박 인사다. 홍 전 회장은 대선 캠프에서, 또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박 대통령을 도왔다. 이 행장도 박 대통령과 서강대 동문으로 금융권 내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꼽힌다. 이런 연줄이 아니라면 그들이 그 자리에 갔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어디 두 사람뿐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낙하산 인사’ 근절을 약속했지만 거꾸로 낙하산 행렬은 더 극성스러워졌다. 여론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다. 낙하산 인사로 만신창이가 된 대우조선해양에 대통령직 인수위 출신 인사를 다시 내리꽂으려 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석가, 예수에 비유하며 신격화하는 70대 친박 인사는 최근 한국자산관리공사 비상임이사 자리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동걸 현 산은 회장도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 대한 금융권 지지선언을 주도한 인물이다.

낙하산의 폐해는 망국적이다. 분담금 4조3000억원을 내고 확보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을 잃었다. 한국 몫으로 이 자리를 차지했던 홍 전 회장이 경거망동한 결과다. 그는 대우조선 사태와 관련해 자신의 무책임을 강조하려 애썼는데, 누워서 침 뱉기였다. 대우조선의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은의 최고경영자(CEO)였던 그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일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국민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대우조선 사태의 뿌리도 결국 낙하산 인사다. 과거 남상태 대우조선 사장은 “독립적인 감사위원회와 수주 관련 사전심의기구를 설치하라”는 산은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을이 갑의 요구를 무시한 꼴인데, 어디에서 이런 배짱이 나왔을까. 실마리는 홍 전 회장이 제시했다. 그는 문제가 된 언론 인터뷰에서 “대우조선 사장은 산은보다 큰 배경을 갖고 있더라”고 실토했다. “알고 보니 대우조선 사장이 더 센 낙하산이더라”는 말이겠다. 대우조선 주변에선 사장이 바뀔 때마다 “청와대가 낙점했다”거나 “정권 실세 ○○○과 친하다”는 식의 소문이 돌았다. 대우조선은 산은이 49.74%, 금융위가 8.51%의 지분을 갖고 있는 사실상의 공기업이다.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 사장 아래서 대우조선의 내부 감시시스템은 붕괴했다. 낙하산 사외이사들도 거수기일 뿐이었다. 브레이크를 제거한 대우조선 경영진은 5조원대 분식회계로 세상을 속이고 횡령, 배임, 사기를 저지르며 거대기업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낙하산 인사의 폐해는 예정된 것이다. 독립성과 전문성이 조직 운영의 성패를 좌우하는데, 애초 그런 기준이 배제된 인사이기 때문이다. CEO의 임무를 잘못 설정하게 만든다는 점은 특히 치명적이다. “주주와 조직이 아니라 엉뚱하게 자기를 뽑아준 사람에게 충성하게 된다”(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는 것이다.

그럼에도 낙하산 인사는 계속될 것이다. 정권의 전리품 챙기기가 멈출 리 없다. 권력이 곧 자리인 탓이다. 법과 제도로 이를 근절하겠다는 것은 환상이다.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 결과에 대해 엄하게 책임을 묻는 거다. 책임을 확실히 물어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박 대통령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는 없어져야 한다”고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낙하산은 그대로이고 공기업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라고 닦달하는 소리만 요란하다. 지독한 위선이다. 우린 반칙해도 ‘개·돼지’들은 룰을 지키라는 건가.

류순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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