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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위작 밝힌 미술품 감정 전문가 이동천 박사

입력 : 2016-07-21 11:43:26 수정 : 2016-07-21 11: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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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감정 비책'(라의눈) 저자 인터뷰 “국내 미술품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신뢰상실이다. 작품의 가치 판단은 물론 진위문제까지 최소한의 거름 장치가 미술계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천경자와 이우환 작가의 위작 논란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경찰과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은 한국미술계의 수치다.”

21일 자신의 저서 ‘미술품 감정 비책’(라의눈)을 통해 천경자 위작을 밝힌 미술품 감정 전문가 이동천 박사는 우리 미술계의 진위감정 현실을 개탄했다.

중국에서 조차도 서화감정학 분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가로 손꼽히고 있는 이동천 박사. 그는 한국과 중국의 그림과 글씨는 물론 종이, 안료, 낙관, 표구, 미술품 복원 등을 두루 섭렵한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한 마디로 제대로 공부한 전문가가 없다. 전문가가 있어도 발을 붙이지 못한다. 이유는 구태여 말하지 않겠다. 주기적으로 작품의 진위 논쟁이 일어나지만 미봉책으로 덮기에 급급하다. 학문적으로 인과관계가 분명하게 진실을 밝히기보다 느낌이나 정황만을 얘기하고 만다. 미술시장의 불황을 이유로 미술품 감정의 문제를 그냥 넘어가려 하기도 한다.”

그는 위작 시비가 자주 일어나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감정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미술평론가나 보존처리가들도 사실상 이런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시비가 일 때마다 감정은 100% 정확할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로 감정의 전문성을 훼손ㆍ폄하하며 덮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감정의 역사가 증명하듯 작가와 작품의 진상은 시간이 걸릴 뿐 반드시 밝혀지게 마련이다.”

그는 진위 시비의 근원적 종식을 위해 감정 능력을 갖춘 전문가와 그 후진을 양성해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에 대한 책임과 자유로운 학술토론이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작품 감정은 미술품을 오랜 시간 많이 다뤘다고 저절로 학습되는 게 아니다. 전문적 교육만이 그 해결책이다. 감정은 평론이나 보존처리와는 또 다른 전문분야임을 알아야 한다. 더불어 감정 전문교육과 감정의 직업도덕교육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는 이번 책을 철저히 대중의 눈높이에서 대중을 위해 썼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미술시장은 나날이 커지고 있고 컬렉션 욕구 역시 높아가고 있다. 그런데 미술품을 사고파는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 판단의 안목을 가르쳐주거나 배울 수 있는 통로는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인도 쉽게 감정학에 입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과서 같은 책이 됐으면 한다.”

사실 국내에서는 여전히 ‘감정학’이란 분야가 생소하다. 미술품 진위 판정을 정교한 ‘감정학’의 토대에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그가 국내 유일의 ‘감정학 박사’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국공립박물관에 가짜 작품들이 버젓이 걸려 있고, 유명 경매에서 위작들이 거래되는 현실에 감정전문가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국내에 위작들이 많이 거래되다 보니, 속지 않기 위해 아예 외국 작품을 산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다 보면 국내 미술시장이 고사되고, 외국 시장에 종속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는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미술시장이 편향되어 있다는 게 더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특정 전문가, 특정 갤러리, 특정 미디어에 치우치다 보니 여기저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어떤 분야든지 마찬가지다. 특정 세력이 정보와 권위를 독점한다면 제대로 된 비판과 토론이 발붙일 수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좋은 미술품이 합당한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은 요원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저서가 한국미술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 지금 한국미술시장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백 명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이들이 천 명이 되고 만 명이 된다면 분위기가 바뀌지 않겠는가? 많은 사람을 오래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대중들이 미술품을 가깝게 여기게 되고 누구나 미술품 투자를 할 수 있다면, 특정 세력이 그들 마음대로 전횡을 휘두르고 이익을 취하는 사태는 멈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대중을 위한 감정학 책을 쓰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감정학이 결코 쉬운 학문은 아니다. 미술사에 통달해야 하고 작가들의 창작습관과 미술 재료도 잘 알아야 한다. 게다가 인문학적 지식까지 총동원되어야 하는 종합 학문이라 할 수 있다.내 책이 미술애호가들에게 그야말로 감정학 입문서가 됐으면 한다. ”

한마디로 알아야 할 것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주고, 관심이 있는 사람에겐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할지도 제시해 주고 있다. 끝으로 그에게 고서화 감정 포인트 하나를 소개해 줄 것을 부탁했다.

“책에서도 언급된 ‘신중국산 연분’이라는 백색 안료에 관한 팁이다. 납 성분으로 만들어진 흰 물감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검게 변하는 특징이 있다. 가끔 신선의 얼굴이 흑인처럼 까맣게 그려졌거나 눈 쌓인 산정을 검게 그린 수묵화가 눈에 띄는데 이것이 모두 신중국산 연분을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색깔이 검게 변하는 이 연분은 1840년대 이후에 나왔다는 것이다. 분명 그 이전에 그려진 그림인데, 희게 표현되어야 할 부분이 검게 나타났다면 명백한 가짜다.”

국내 유일한 미술품 전문 감정학자인 그는 자신의 역할이 미술시장의 혼돈과 암흑을 거둬가는 한 줄기 빛이 되기를 바란다.

이동천 박사는 1994년부터 중국 서화 감정의 최고봉인 양런카이(楊仁愷, 1915~2008) 선생의 수제자로 서화 감정학을 배웠고,중국 국학 대가인 펑치용(馮其庸) 선생으로부터는 문헌 고증학을 사사했다. 1999년 중국 중앙미술학원에서 감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10여년간 한국 고서화 수집과 감정 연구를 집중적으로 진행해 왔다. 2001년엔 국내 최초로 명지대 대학원에 ‘예술품 감정학과’를 개설하고 2년간 주임교수로 역임하며 우리나라에 ‘감정학’이란 새로운 학문의 씨앗을 뿌렸다. 2004년부터 11년간 서울대 대학원에서 ‘작품감정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진상: 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동아일보사)이 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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