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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노조 뒤에 숨은 죗값, 315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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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21 21:31:38 수정 : 2016-07-21 22: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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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이 최근 파기 환송한
대우조선 이행보증금 공방
산은은 필수불가결 절차였던
한화 실사가 왜 무산됐는지
반추하고 깊이 반성해야
보는 눈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동의가 어려운 이도 없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기엔 사필귀정이다. 한화 측과 한국산업은행 측의 분쟁을 정리한 대법원의 지난 14일 판결 얘기다.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 중심에는 2008년 성사 직전에 엎어진 대우조선해양 인수 협상이 있다. 당시 인수 이행보증금으로 3150여억원을 선지급한 한화가 산은과 한국자산관리공사를 상대로 반환 청구소송을 내 공방이 이어졌다. 1·2심은 산은 손을 들어줬다. 이행보증금을 챙겨도 좋다고 한 것이다. 대법원은 달리 봤다. “이행보증금 전액을 몰취하는 것은 부당하게 과다하다”고 했다.

왜 사필귀정인가. 최종계약 체결에 이르는 필수불가결한 선행절차였던 한화의 확인실사가 무산된 것에 주목하면 판단이 쉽다. 왜 무산됐나. 대우조선 노조가 실력저지를 한 탓이다.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대우조선 대주주인 산은부터 무기력했다. 그 책임이 작지 않고, 한화에 불리하게 작성된 양해각서도 정의와 거리가 멀다고 본 것이 대법 판결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서민이 허름한 집을 사더라도 가옥 상태와 법적 권리관계를 꼼꼼히 살피게 마련이다. 대우조선 거래가는 6조원을 웃돌았다. 한화로선 그룹 사활을 건 거래였다. 그런 거래에서 꼼꼼히 살필 기회도 안 준다는 게 말이 되나. 물론 산은도 할 말은 있다. 실사에 상관없이 2008년 12월29일까지 최종계약을 체결한다는 조항을 각서에 넣었으니까. 그러나 각서에 못지않게 조리와 상식도 중요한 법이다.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도 그래서 무릎을 꿇었다. 대법 재판부는 샤일록 냄새가 나는 결론을 피했다. 사필귀정으로 여겨질밖에.

이번 판결을 놓고 웃을 계제는 아니다. 서울고법이 어떤 매듭을 지을지부터 미지수니까. 고법은 12년 판결에서 부실 파악을 위해 확인실사가 필수적이었다는 한화 주장에 대해 “워크아웃 기업, 특히 대상회사(대우조선)의 경우 우발채무의 발생이나 자산가치 부실의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했다. 산은의 관리감독 의지와 능력을 과신했던 모양이다. 새 결론이 어찌 나올지는 두고 봐야 한다.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문제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우조선 처리 문제다. 거제에선 이미 일자리 증발 비보가 이어지고 있다. ‘말뫼의 눈물’도 거론된다. 단돈 1달러에 골리앗크레인을 현대중공업에 넘긴 스웨덴의 비극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위기의 진앙이 바로 대우조선이다. 정부는 최근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했다. 구조조정 자금 조성을 위한 비상계획도 내놓았다. 하지만 대우조선의 2015년 말 기준 부채비율은 7308%다. ‘구제불능’에 가깝다. 추상 같은 판결이 골백번 더 나와도 이 암담한 현실이 타개되지는 않는다.

검찰은 현재 대우조선 경영 비리를 파헤치는 중이다. 여태껏 불거진 주요 혐의만 봐도 남상태·고재호 전 사장의 재임 기간(2006∼15년)에 골병이 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회계조작 규모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산은을 축으로 한 관치금융 시스템은 제동을 걸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판결 앞에서 아쉬움이 커진다. 8년 전 실사가 이뤄졌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하는 생각이 부질없이 드는 것이다.

한화의 당시 자금 사정은 녹록지 않았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문이 그렇게 컸다. 실사가 이뤄졌어도 최종계약이 체결됐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한화 실사팀이 경영 상태를 제 손금처럼 들여다봤다면 많은 것이 변했을 것이다. 국내 조선업계가 해양플랜트 사업에 뛰어든 시기는 2008년 하반기였다. 해양플랜트 실패 드라마의 초기 제어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되지 못했나. 산은 책임이 무겁다. 산은은 물리력을 행사하는 대우조선 노조를 상대로 실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과 같은 법적 조치조차 취하지 않았다. 그저 1심 판결문에 적시된 대로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움직였을 뿐이다. 노조 요구를 전폭 수용하도록 한화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해서 일을 그르쳤다. 깊이 반성해야 한다. 산은이 3150여억원의 일부를 넘어 전부를 잃더라도, 노조 뒤에 숨어 복지부동한 죗값으로 여길 일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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