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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무거운 책임감 '지쳐 쓰러지는 가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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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26 14:49:28 수정 : 2016-07-26 17: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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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출 후 입은 정장은 좀처럼 벗기 힘들다.
가정과 사회에서 중추 역할을 하는 중년남성들이 지쳐 쓰러지고 있다.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2015 자살자 통계'에 따르면 40~50대 중년남성의 자살은 각각 4406명과 4204명으로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많다. 특히 여성과 비교하면 3배에 달한다.

그들은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사회학 박사이자 남성학자 다나카 유키 교수(40·무사시대 사회학 조교수)는 "막중한 책임감과 회의(懷疑)"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2015 자살자 통계. (자료= 일본 내각부)
▲ "'남성은 일, 여성은 가정'이라는 관념이 이젠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최근 들어 여성들의 목소리와 사회활동이 늘고 있지만, 아직 사회는 '남성은 일, 여성은 가정'이라는 관념이 일반적이다.

남성들은 대학졸업과 동시에 정장 또는 작업복을 평상복처럼 입으며 약 40년간 하루 12시간쯤 일하게 된다. 장시간의 근로만으로도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여기에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겨내야만 한다.

이는 과거 '종신고용시대(고용된 사람에게 정년까지 장기고용을 보증하려는 경영 관행)부터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종신고용의 의미는 경제 불황 여파로 퇴색됐지만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럼 "안 하면 될 것 아닌가"란 생각은 "가정을 지켜야 한다"라는 단 한마디로 일축된다.
딱히 대책도 없고 "다른 일은 사정이 나은가"라고 스스로 질문에 답을 찾더라도 "크게 다를 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거래처의 요청에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직장인. (=일러스트) 20시 까지라며 일하고 있다.
▲ "힘들어도 옛날에는 가능했다. 하지만 이젠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건 "힘들지만 노력하면 가능"했기 때문이다.

버블시대. 그땐 남자 혼자서도 열심히 일한다면 온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남자는 근면·성실하면 성공한다"라는 공식과도 같은 말이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 버블경제가 무너지고 ‘남성 노동자 모델’로 불리는 모습의 유지가 어려워졌다. 근면해도 노력해도 발버둥쳐도 더 이상 과거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고도성장기 정해진 사회모델과 남성에 대한 평가는 그대로다.
"그래서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다"
시대는 변했지만 과거의 관념은 변하지 않고, 이런 것들이 가장들의 어깨를 짓눌러 쓰러지게 하는 것이다.
▲ "정말 성실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인생에서 남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괴로운 중년남성.
하루 12시간 일하고 때에 따라 회식에 접대 등등. 늦은 새벽이 돼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간다. 주말에도 회사에 불려 나가 일하거나 접대한다. 이때 정시퇴근을 했다면 운이 좋은 날로 기억에 남는다.
삶의 선택이 극히 제한되어 있고, 이런 생활을 20년간 했으며 앞으로 똑같은 일을 20년간 더 해야 한다.

부모님을 봉양하며 자식들을 뒷바라지한다. 그 후 자식을 결혼시킨 후 정년을 맞이한다. 자영업 역시 마찬가지다.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것은 크게 다를 게 없다. 앞을 보고 뒤를 보고 옆을 봐도 다 똑같다. 무엇인가 잘못된 듯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고 답도 없으니 더 괴롭다.

그리곤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남자니까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 "남자는 집의 기둥이고 중심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 달랠 곳은 동병상련인 동료(친구)와 마시는 술 한잔과 담배뿐이니 건강마저 나빠진다. 
남성학자 다나카 교수는 "자신 스스로 목을 조르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나카 교수는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금전적인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에 직장과 거리를 두는 것은 어려우니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윗세대를 비판하면 일시적인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며 "어렵겠지만 자신에게 조금 관대해져 '나는 조금 덜해도 괜찮다는 의식과 무엇을 하고 싶나'라고 끝없이 생각하고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지킬 유일한 사람은 자신이고 자신이 돈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남성 노동자 모델이 변한 지금은 예전만큼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선은 나 자신과 주변을 변하게 해야 한다. 변하면 살기 쉬워진다"고 조언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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