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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대학 입시서류 믿지 못하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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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27 22:34:46 수정 : 2016-07-28 02: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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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못 믿고 의심부터 하는
불신의 공동체 슬픈 자화상
불신 조장하는 1%의 탐욕
‘노력하면 성공’은 옛말
이달 초 고3 아들이 대학 입시 원서를 냈다. 9월 수시 전형에 앞서 방학 중 실시하는 재외국민 특례전형이다. 대학마다 적게는 10여가지, 많으면 20여가지 서류를 요구했다. 제출 서류를 준비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학적을 국내외로 옮긴 탓에 학생생활기록부에 변변한 내용이 없다. 제한된 매수의 서류로 지원자 능력과 적성을 보여줘야 한다. 서류 준비를 컨설팅업체에 맡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부 대학에서 토익위원회가 발급한 성적표만 인정할 정도로 서류 검증은 까다롭다. 서류마다 덕지덕지 도장이 찍혀 있다. 원본에 여분이 없어 복사본을 만들어 쪽마다 원본대조필 직인을 받아야 한다. 특히 해외 학교에서 발급한 서류는 해당국 주재 우리 영사의 직인이 찍혀 있거나 아포스티유 확인서가 첨부돼 있어야 한다. 아포스티유는 협약 당사국 간에 문서를 인증하면 상대 국가에서도 법적 효력을 그대로 인정하는 제도다. 

박희준 논설위원
1년여 전 미국에서 아포스티유 확인을 받은 과정은 블랙코미디다. 우리 영사관에서는 해외 학교에서 발급한 재학 입증 서류와 성적표 외에는 영사 확인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다. 학교 교사나 카운슬러가 서명 확인해 준 학생 활동사항 기록일지라도 사적 서류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주 정부의 아포스티유를 받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포스티유 확인을 받으려면 공증이 필요하다. 공증인은 “카운슬러 서명이 있는데 왜 따로 공증을 받으려 하느냐”고 의아해했다. 한국 대학에서 아포스티유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서명만 있으면 진본 확인이 되는 미국 사회이다 보니 공증에 아포스티유까지 받는 상황을 그려볼 수 없는 것이다.

지난해 6월 ‘한인 천재소녀의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동시합격’ 오보 소동이 있었다. 최초 오보를 낸 교육전문 컨설턴트는 “전문가라면서 합격증 위조를 몰라봤겠느냐”는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본인은 억울했지만 “잘못은 잘못”이라며 해명하지 않았다. 미국 사회에서 서류가 위조됐을 수 있다고 의심하는 자체가 비정상적임을 안다면 그에게 손가락질만 할 일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문서 위·변조는 신뢰의 근간을 무너뜨린다는 인식에서 중대 범죄로 처벌받는다.

공동체 문화에서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 간의 신뢰는 중요한 가치다. 우리 사회는 개인 간 불신의 벽이 높다. 타인의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경계부터 하는 세태다. 개인은 공동체를 믿을 수 있을까. 공동체가 개인을 믿지를 못하는데. 개인이 내는 문서와 기록조차 의심할 정도로.

지인들을 만나면 아무래도 입시 얘기를 자주 하게 된다. 이미 겪은 세대에게는 부질없는 고민으로 보이겠지만. 얘기해 보면 다들 자녀가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구닥다리라고 느끼고 있다. 대학 나오더라도 좋은 직장 잡기가 너무 어렵다는 걸 잘 안다. 그러면서도 대화는 한숨으로 끝난다. 대안이 없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사회가 그 정도로 공정하지는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답답함만 가중된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 노력으로 상위 1%로 진입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격이다. 1%라는 자들은 탐욕에만 눈이 멀어 있다. 아들딸, 며느리, 손자에게 회사를 갈라주고 빵집을, 커피숍을 내주면서 그들만의 성을 공고히 쌓는다. 서울 강남지역에서는 공부조차도 과외나 학원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상위권으로 들어갈 수 없다. 1%들은 과외와 학원으로도 자녀 공부가 신통치 않으면 외국으로 학교를 보내 그럴싸한 학력을 만들어 온다. 열심히 노력만 하면 성공한다는 얘기는 신화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처가와 넥슨 간 1000억원대 부동산 거래 논란으로 얼마 전 드러난 사실이 하나 있다. 처가 쪽 한 인사가 자녀를 외국인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온두라스 위조 여권으로 국적을 속이려 했다가 처벌된 적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인구 5만명으로 이름도 생소한 세인트키츠네비스로 국적을 바꿔버렸다고 한다. 이제야 대학이 서류를 믿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다. 1% 세계에서 외국인 학교 입학을 위해 이 정도니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어떤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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