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과 감동의 귀중한 작업
취업이나 돈보다 중요한 건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와 성찰 최근 출판가에는 필사 책이 붐이다. 출판사에서 저마다 고전 베껴쓰기 라이팅북을 내놓고 있다. 세계 고전에서부터 한국고전까지. 톨스토이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헤르만 헤세 ‘데미안’, 막스 뮐러 ‘독일인의 사랑’에서 윤동주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백석 ‘사슴’, 한용운 ‘님의 침묵’, 소월 ‘진달래꽃’까지. 철학고전도 ‘논어’, ‘맹자’ 등 아예 시리즈로 라이팅북이 준비되고 있다.
전철만 타면 ‘엄지족’이 양 엄지로 문자를 보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자신의 존재증명을 하고 있는 시대, 이 초디지털사회 속에 웬 아날로그식 ‘베껴쓰기’인가. 컴퓨터 자판에 익숙해서 자판 위에 손이 올라가 있지 않으면 아예 생각이 안 떠오른다는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휴대전화기 글앱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도 만난 적이 있다. 최근 2년 사이 인류가 만들어낸 정보가 인류 역사가 생긴 이래 만들어진 정보 양의 몇 배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야말로 빅데이터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정보를 저장하기도 바쁘다. 하루아침에 쏟아지는 정보만도 숨이 차고 업데이트를 하기도 숨이 벅찰 지경이다. 그런데 ‘엄지족’이 아닌 ‘필사족’이라니.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
우리는 지독한 생존경쟁, 남을 짓밟아야만 자신의 생존이 보장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영화 ‘부산행’에서 기차 칸에서의 생존경쟁은 그야말로 지독한 속도로 달려가는 현대인에 대한 모사다. 영화의 카피처럼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목표가 너무 지나쳐 정작 ‘소중한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소중한 것’이 바로 ‘자기자신’은 아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잃어버린 자기를 찾아서 현대인들은 ‘필사’를 하고 있다. 컴퓨터 자판이 손끝으로 사유하기라면 필사는 온 몸으로 사유하기다. 누워서 쓰기도 하고 앉아서 쓰기도 하고 턱을 괴고 쓰기도 하고 일어나서 쓰기도 한다.
인디언 풍습에서 인디언들은 길을 걷다가도 가끔 멈춰야 한다고 한다. 자신의 그림자가 자신을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 차 뒤를 돌아보기 위해서이다. 어느 책에 의하면 330잔의 커피, 120병의 맥주, 90병의 소주, 그리고 0권의 책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이란다. 또 대화를 싫어하는데 그중에서 인문학에 대한 대화를 싫어한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과 세상에 대해 사유하고 성찰하는 힘을 키우는 대신 영어 단어 하나, 스펙 하나 더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입시와 취업과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다 보니 우리는 더더욱 가난해지는 것이 아닐까. 자기되새김의 시간, 필사의 시간이 필요하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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