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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의창] 선조들의 여름나기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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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02 21:56:35 수정 : 2016-08-02 21: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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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 최고의 음식으로 개장국 즐겨
한여름 뜨끈뜨끈 부침개로 ‘이열치열’
열대야가 계속되면서 무더위를 실감하게 하는 날이 지속되고 있다. 에어컨, 선풍기, 냉장고 등 각종 기계가 동원되지만 더위는 쉽게 피해갈 수 없다. 요즘처럼 각종 기기를 활용할 수 없었던 전통시대에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무더위를 피해 갔을까.

정조 때의 학자인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가장 덥다는 삼복(三伏)의 풍속이 소개돼 있다. 먼저 오늘날의 보신탕에 해당하는 개장에 관한 내용이 주목을 끈다. “개를 잡아 통째로 삶아 파를 넣고 푹 끓인 것을 개장(狗醬)이라 한다. 닭이나 죽순을 넣으면 더욱 좋다. 개장에 고춧가루를 넣고 밥을 말아서 시절 음식으로 먹는다”고 기록하고, 이어서 “복날에 개장을 먹고 땀을 흘리면 더위를 잊게 하고, 질병을 쫓을 수 있으며 보신이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시장에서도 개장을 만들어 많이 팔고 있다”고 하여 당시 시장에서도 개장이 널리 판매되었음과 함께 “오늘날에도 개장을 삼복 중에서 가장 좋은 음식으로 친다”고 하여 조선후기 복날의 최고 음식은 오늘날의 삼계탕을 제치고 개장이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삼복에는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무더운 복중에 먹는다. 이것은 악귀를 쫓으려는 데서 나온 것이다”고 한 기록에서는 악귀를 쫓기 위해 붉은 팥죽을 많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에도 팥빙수가 유행이니 팥은 한여름 더위와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볼 수 있다. “나무로 만든 패를 각 관청에 미리 주어 그것을 가지고 얼음창고에 가서 받아가도록 했다”는 기록에서는 얼음을 직급에 따라 할당해 준 상황을 엿볼 수가 있다.

무더위를 날리는 여름철 음식도 소개돼 있다.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풋나물과 닭고기를 넣어 어저귀국(아욱국)에다 말아 먹었으며, 또 미역국에 닭고기와 국수를 넣고 물을 약간 넣어 익혀 먹기도 했다. 호박과 돼지고기에다 흰떡을 썰어 넣어 볶기도 하고 혹은 마른 복어 머리를 함께 넣고 볶아서 먹기도 했으며, 밀가루에다 호박을 잘게 썰어 넣고 반죽해 기름을 발라 전을 부쳐서 먹었다.

오늘날에는 비가 오는 날에 주로 먹는 부침개가 한여름의 별식이기도 했던 것이다. 참외와 수박은 조선후기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하는 대표적인 과일이었고, 더위를 쫓는 또 하나의 방법은 산과 계곡을 찾는 것이었다. 삼청동과 탕춘대(현재의 세검정 주변), 정릉의 계곡에는 사람이 많이 모여들었다. 남산과 북악산의 맑은 계곡을 찾아서 발을 씻고 목욕을 하며 하루를 유람하는 것도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이었다.

지금의 선풍기나 에어컨의 대체품인 부채는 더위를 피하게 하는 일등 공신이었다. 특히 부채에는 여덟 가지 덕이 있다고 하여 ‘팔덕선’(八德扇)이라고 불렀다. 이유원이 쓴 ‘임하필기’에는 팔덕선의 이야기가 나온다. 팔덕은 바람 맑은 덕, 습기를 제거하는 덕, 깔고 자는 덕, 값이 싼 덕, 짜기 쉬운 덕, 비를 피하는 덕, 햇볕을 가리는 덕, 독을 덮는 덕 등 8가지로 부채의 좋은 점을 지적한 것인데 매우 해학적이다.

무더위의 공세와 그 대처법은 전통시대부터 지금까지 일관되는 내용이 많다. 전통시대 선조들의 피서법을 따라가면서 무더위를 식혀 보기를 바란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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