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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테러리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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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02 22:17:56 수정 : 2016-08-02 22: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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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광기 끝 간 데 없이 번져
교황·메르켈 리더십 돋보여
관용·올바른 정치가 근본 해법
삶을 사랑하는 세상 만들어야
타나토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죽음의 신이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삶의 본능인 에로스에 대비되는 죽음의 본능을 타나토스라 했다. 에로스는 관계를 창조하고 조직하는 반면 타나토스는 관계를 단절시키고 마비시킨다. 타나토스가 외부로 향할 때 인간은 폭력과 테러의 광기에 빠져든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저서 ‘인간의 마음’에서 폭력의 원인에 대해 “삶을 믿고 사랑하다가 실망한 사람은 삶을 냉소하며 파괴하는 자가 된다”고 한 이유다. 삶에 절망해 삶을 증오하게 된다는 것이다. 테러의 유혹에 빠지는 심리를 짐작할 수 있다.

테러는 개인이나 단체가 폭력을 가해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리는 것을 말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게 목표다. 사회적·정치적 맥락에서 생기는 행위이지만 그것이 왜곡된 행태로 나타난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마디로 야만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다. 인간성에 반하는 행위이며 인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박완규 논설위원
올 들어 대형 테러가 줄을 잇고 있다. 3월13일 터키 앙카라 테러, 3월22일 벨기에 브뤼셀 공항·역 동시다발 테러, 6월28일 터키 이스탄불 공항 테러. 모두 30여명씩 희생자를 낸 자살폭탄 테러다. 이어 프랑스대혁명 기념일인 7월14일 프랑스 남부 해안도시 니스에서 튀니지 출신 테러범이 몬 19t 대형트럭이 축제를 즐기는 군중을 덮쳐 8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7월26일에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시골 성당에 10대 테러범 2명이 침입해 86세 신부를 제단 옆에 무릎 꿇게 하고 아랍어로 설교하듯 말한 뒤 흉기로 신부의 목을 그어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지옥의 힘’에서 “테러리즘은 단지 사태를 극단에, 절정에 이르게 할 뿐”이라고 한 말을 연상시킨다. 테러의 광기가 끝 간 데 없이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는 영문 선전잡지 ‘다비크’ 표지에 ‘십자가를 파괴하라’는 제목을 달고 “서방의 숨은 전사들은 지체없이 기독교인을 공격하라”고 했다. IS를 추종하는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의 테러를 부추기는 것이다. 종교갈등을 확산시켜 자신들을 이슬람 보호자로 여기게 하려는 의도다.

가히 테러리즘 시대라 할 수 있다. 테러가 일상화됐다는 말이 나온다. 무능한 정치 탓이다. 영국 문학이론가 테리 이글턴은 ‘성스러운 테러’에서 “많은 경우 정치 테러는 기존 정치가 활력을 잃고 정형화될 때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배제당한 존재들의 요구에 기존 정치세력이 귀 기울이지 않으면 그 요구는 점점 더 병리적인 것이 된다”고 했다. 테러리즘은 무력한 관리인 신세로 전락한 정치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테러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일부 소외계층 사이에 정치적·사회적 불만이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테러로 폭발하는 것이다.

IS가 종교갈등을 부추기는 데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슬람과 폭력을 동일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유럽 각지에서는 가톨릭과 이슬람이 테러 희생자 추모식에 함께 참여하고 연대 행사를 여는 등 종교화합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난민 포용정책이 테러를 유발한다는 주장에 대해 “테러범들은 문화·종교 간 증오와 두려움을 심으려 하지만 우리는 단호히 맞설 것이고 난민을 계속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테러리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관용과 올바른 정치가 근본적 해법이다.

우리 모두가 테러리즘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테러리즘의 온상이 되는 집단이나 지역에 관심을 갖고 이들이 테러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에리히 프롬은 삶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다. “삶에 대한 사랑이 발전할 수 있으려면 ‘∼하는’ 자유, 곧 창조하고 건설하고 경탄하고 모험하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유는 노예나 기계의 정확한 톱니바퀴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책임 있는 개인을 요구한다.” 인간을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면 삶을 사랑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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