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차이 받아들이는 것 매우 중요
이런 면에서는 필자도 되돌아보면 부끄러운 경험이 있다. 나의 부모는 평양에서 피난 오셨기에 어렸을 때부터 평양냉면을 즐겨먹었다. 하지만 아내는 부모가 함흥에서 피난 오셨기에 함흥냉면을 즐겨먹었다. 결혼 후 한동안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중 어느 것이 더 맛있는지를 두고 서로 다투었다. 결혼한 지 40년이 되는 현재는 둘 다 맛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형편에 따라 둘 중 하나를 먹는다.
8월이 되면 또 다른 황당했던 경험을 잊을 수 없다. 1979년 8월 나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대학교로 유학을 갔다. 시카고에 도착한 후 처음 맞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러 교회를 찾아갔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교회가 문을 닫았던 것이었다. 다시 물어물어 다른 교회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 교회도 문을 닫은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 처하니 교회마저 문을 닫는 시카고에서 유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무서워졌다. 그렇게 일요일을 보낸 후 먼저 유학 온 선배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이곳엔 8월 한 달 동안 교회가 방학을 한다”고 알려줬다. 그런데 9월이 되자 거짓말처럼 교회가 멀쩡하게 문을 열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닌가. 이 경험은 40년이 거의 다 된 지금에도 생생하게 나의 마음에 박혀 있다. 이 사건은 문화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실히 각인시켜 줬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 사이라도 똑같을 수는 없다. 결국 너와 나는 다르다. 다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 같은 부분이 많을 뿐이다. 다른 이유는 개인적으로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우리 모두는 문화가 다른 조직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성격이나 문화는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성격을 바꾸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하물며 문화를 바꾸는 일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미성숙한 사람은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고 계속 상대방을 자신과 같게 만들려고 한다. 이들은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 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다름’이 당연하고,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들은 “너도 맞고, 나도 맞다”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들은 ‘화이부동(和而不同)’할 수 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맺는 인간관계는 건강하다. 따라서 상대방도 더 마음이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 황희 정승의 일화가 우리에게 계속 감동을 주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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