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류순열의경제수첩] 숫자에 가린 민생

관련이슈 류순열의 경제수첩

입력 : 2016-08-12 20:36:43 수정 : 2016-08-12 21:52:2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한국경제 지표 양호하다지만
서민들은 전기료 폭탄 걱정
청년들은 일자리 갈증 여전
숫자가 삶의 질을 말하진 않아
#1. 전기료가 무서운 가계

이번달 전기요금이 걱정이다. 정부가 좀 깎아준다지만 걱정이 가시지 않는다. 수십만원 폭탄을 맞을 것 같다. 낮이고 밤이고 에어컨을 틀어댔다. 나만의 걱정이 아닐 것이다. 올여름 더위는 지독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근심을 몰고왔다. 열대야는 물리쳤지만 서민의 한숨을 키웠다. 전기를 많이 쓰면 최대 12배의 요금을 물어야 한다. 대기업 전기요금은 수천억원 깎아주면서 가계엔 어찌 그리 가혹한가. 가계가 소비하는 전력은 전체사용량의 10%대 초반일 뿐인데.

불만이 쏟아져도 정부는 처음엔 꿈쩍하지 않았다. 불볕더위처럼 여론이 들끓자 그제서야 7∼9월 전기요금을 ‘찔끔’ 깎아주기로 했다. 가구당 월평균 8000원꼴이란다. 그나마 가계엔 도움이 되겠으나 왜 늘 뒷북인가.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감사원이 2013년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불합리하다”며 개선을 권고하기도 했다.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치면서 그동안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류순열 선임기자
#2. ‘흙수저 청년’의 좌절

20대 중반의 대학생 K는 공공기관에서 ‘알바’(아르바이트) 중이다. 자료를 복사하고 철을 하는 등 사무 보조 일을 하고 있다. 7시반 출근, 4시반 퇴근으로 월 140만원을 받는다. 그 정도면 꽤 괜찮은 자리다. 경쟁률이 제법 세다. 한 명 뽑는데 열 명은 몰린다. K는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려는데 먼저 학원비를 모으기 위해 알바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누군가 학원비를 마련해준다면 그는 지금 높은 경쟁률을 뚫고 복사기를 돌리는 대신 학원에서 강의를 듣고 있을 것이다.

취업을 위해 알바를 하는 K들은 수두룩하다.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은 이들을 겨냥한 것이다. 신청자들은 “알바를 쉬고 그 시간에 배우고 싶은 기술이 있다”거나 “알바를 쉬고 시험준비에 매진하고 싶다”고 사유를 밝혔다. 3000명의 K들에게 최장 6개월간 월 50만원은 그들의 인생을 바꾸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 시행해보고 효과를 따져보면 될 일이다. 예산은 90억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2조원대 청년정책예산을 쓰는 중앙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3월부터 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협의에 들어갔고 복지부가 제시한 수정안이 일부 반영됐으며 공동발표까지 하기로 했는데 막판에 복지부 태도가 돌변했다. 이젠 범정부 태스크포스까지 만들어 전면전 태세다. 그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박원순 서울시장을 반대하기 위해 청년수당을 걸고 넘어진 혐의가 짙다. 정치가 민생을 돌보지 않는 또 다른 현장이다. 청년수당이 무슨 죄인가. ‘헬조선’의 흙수저 청년들은 무슨 잘못을 했나.

#3. 주거비에 짓눌린 서민

2014년 8월 정부와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 + 주택금융규제 완화’의 정책조합을 단행했다. 박근혜정부의 실세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직후다. 집을 담보로 돈을 더 싸게 더 많이 빌릴 수 있게 해줄 테니 집을 사라는 메시지로, 경제정책의 대전환이었다. 화끈한 부양책에 가계부채는 폭증하고 전셋값 고공행진이 이어졌다. 서울지역 아파트 전세가격은 박근혜정부 출범 후 27% 폭등했다. 무주택 서민의 주거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누구를 위한 정책이었나. “당장 GDP(국내총생산) 조금 올려보려고 강남에 집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을 편 것”(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이라는 평이 정곡을 찌른다.

#4. 숫자에 가린 민생

한국경제를 설명할 거시지표들은 양호하다. 저성장이 뉴노멀인 시대에 2%대 후반의 경제성장률은 낮은 게 아니다. 단기부양책의 결과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최근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AA- 에서 AA로 높였다. 코스피는 다시 2000선을 회복했다.

‘포장지’는 그럴듯하지만 내용은 별개다. 양호한 성장률이 서민의 전기요금 걱정과 흙수저 청년의 좌절을 보듬어주진 않는다. 거꾸로 이 숫자는 서민의 주거비 부담을 키운 결과다. 이들에게 성장률이 2.5%냐 3%냐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국가신용등급도 ‘빚 갚을 능력’을 본 것일 뿐 한국경제의 질을 평가한 게 아니다. 정부가 매달리는 ‘숫자’가 삶의 질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류순열 선임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