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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3편의 영화와 한국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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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15 21:59:51 수정 : 2016-08-15 21:5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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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당파적 편협성 보여준
인천상륙작전·덕혜옹주 관람
현실정치의 어두운 면 꼬집은
부산행은 왜 단체관람 안 했나
폭서가 심상치 않은 기후환경의 재앙을 예감케 하는 가운데 국민 피서용 영화가 된 방화 3편이 화제를 몰고 있다. 여기에 여야 정치권이 단체관람을 하면서 극명하게 당파적 입장을 보여주는 풍경을 통해 우리는 해방과 분단, 6·25를 거치면서 형성된 분단의식이 아직도 반복되고 있고, 사대·식민·마르크스주의의 각축으로 인한 국민정체성 혼란을 읽을 수 있게 한다.

탄탄한 시나리오 구성으로 마지막 황녀의 기구한 인생유전과 함께 일제식민지, 독립운동, 매국과 친일 행각의 파노라마 속에서 역사를 다시 기억하게 한 ‘덕혜옹주’. 6·25의 전세를 한 번에 뒤집어 오늘의 대한민국을 존재케 한 물리적 바탕을 마련한 인천상륙작전을 해군첩보부대원과 켈로부대원의 극적인 활약상을 통해 재조명한 인천상륙작전. 끝으로 산업화와 금융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어느덧 국민 각자는 자기이익만을 추구하고, 사회는 ‘좀비 사회’가 되고만 한국 현실을 KTX 부산행 열차 속에서 의문의 바이러스로 번진 괴질을 소재로 고발한 휴먼 드라마 ‘부산행’. 아무튼 예술이 현실보다 더 진한 현실이 되는가 하면 현실이 예술보다 더 진한 예술이 되고 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무엇보다도 자기의 역사와 현실에서 주제를 만들어내고 여기에 상징적 은유와 리얼리티와 재미를 보탤 수 있는 영화를 만든 영화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국 영화도 한류를 이끌어가는 대열에 끼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관객 수를 보면 현실을 고발한 부산행이 올해 첫 1000만 관객 돌파와 함께 국민의 현실인식을 짐작게 한다. 야당 국회의원은 덕혜옹주를, 여당 국회의원은 인천상륙작전을 단체관람했다고 한다. 물론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역사관, 철학 등이 그러한 선택을 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민주·민중의식은 덕혜옹주와 인천상륙작전 사이에 갈라져있는가 묻게 된다. 인천상륙작전은 시사회 이후 영화전문가 사이에 혹평이 많았지만, 현재 미국 등 해외시장에서 인기를 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선 정국과 맞물려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후퇴 조짐이 일고 있는 미국에서 유엔의 이름으로 미국이 주도한 한국전쟁에 대한 향수와 함께 세계 역사를 주도하고 싶은 미국인의 의지를 예감케 한다.

역사를 보면 이상과 현실은 항상 포개져 있다. 마르크시즘만큼 이상의 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약소민족이나 식민지국가의 국민에게 호소력 있었던 이데올로기는 없을 것이다. 세계 체제의 권력 경쟁의 막장에 있었던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한국인은 민중민주주의에 대한 매력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좌파들은 아직도 자신이 정의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에 들어간다고 떠들지만 근대국가와 시민의식의 면에서는 한국은 아직도 모자라는 면이 많다.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국민의 집단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를 보면 물질문명은 어느 정도 세계의 수준을 따라갔지만 정신문화와 국민의식은 지체돼 있음을 보게 된다. 덕혜옹주는 식민지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그러한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인천상륙작전은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남조선해방전쟁(전선)’을 좌절케 한 작전이다. 친북세력은 인천상륙작전을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덕혜옹주와 인천상륙작전은 본의 아니게 이념갈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여야 의원은 왜 부산행을 단체관람하지 않았을까. 자신들이 정치를 담당하고 있는 현실의 어두운 면을 그렸기에 본능적으로 외면하고 싶었을까. 역사물에서 현실을 찾고, 정작 현실은 외면하고 싶은 권력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북한은 핵개발로 인한 어려운 경제사정과 통치자금 마련을 위해 어민의 생계를 외면한 채 서해바다와 동해바다의 어업권을 중국에 팔아넘긴 입장이고, 남한은 아직도 한국전쟁 당시의 분단의식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남남갈등과 외래 이데올로기의 종속적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학수(이정재 분)와 림계진(이범수 분)은 둘 다 소련 유학을 한 북한 엘리트였다. 장학수가 공산주의와 멀어진 것은 동료가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 계기가 된다. 이데올로기의 동일성을 신봉한 나머지 부자간의 의리마저 압살하는 위선성을 직면하고부터이다. 장학수는 끝내 맥아더의 첩보부대 X-Ray 대원이 된다. 인천지역 사령관인 림계진은 철저하게 공산주의로 무장된 인물이다.

맥아더장군(리엄 니슨 분)의 명대사.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나의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이상을 버린다는 것은 나의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네.” 문제는 누구의 이상이 현실로 되는가이다. 남북한의 이상은 아직 현실의 접점이 돼야 할 ‘평화통일’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최악의 ‘세습전체주의’이고 남한은 좀비 사회이다. 부산행의 마지막 장면. 임신한 부인과 소녀가 터널 속을 걸어가 안전지대인 부산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괴질’의 감염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지역방어군인이 사격명령을 받았으나 소녀의 노랫소리가 들려나오자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노래하는 마음이 좀비를 극복하고 평화를 실현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해운대, 국제시장에 이어 부산행은 6·25의 경험 때문인지 남쪽 피란처로 부산을 상상케 한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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