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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바담 풍’ 경찰청장 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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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23 21:36:40 수정 : 2016-08-23 22: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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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위기로 비틀거려도 임명할 듯
이철성 가세로 우병우사단 무소불위
채동욱 검찰총장은 3년 전 조선일보가 혼외자 의혹을 보도했을 때 즉시 서울중앙지법에 정정보도 청구 소장을 내 “(혼외관계로 지목된) 임모씨와 어떤 부적절한 관계도 가진 바 없고, 따라서 혼외자녀가 있을 수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채동욱은 퇴임사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부끄럽지 않은 남편과 아빠로 살아왔다”고 했다. 이 자리엔 부인과 둘째 딸이 와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하늘나라에서도 변함없이 아빠를 응원해주고 있는 큰딸’까지 거론하면서 이 말을 했다.

권력의 주변에서 거짓말은 일상사로 행해진다. 출세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진실을 숨기고 얼버무리고 속이게 된다. 위대한 철학자 니체도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생의 잔인한 한 측면이다”라고 했다. 악의 없는 거짓말을 인정하지 않으면 세상에 더 많은 악이 생겨나므로 거짓말을 완전히 없앨 수도 없다. 그렇더라도 공직자의 거짓말은 위험하다. 드러나면 어렵게 쌓은 평판을 한순간에 날리고 인생을 송두리째 보낼 수도 있다. 우리는 채동욱에게서 그것의 잔인함을 본다. 

백영철 편집인
현 정부 들어 거짓말로 인생을 한순간에 날려보낸 이는 또 있다. 정성근 문체부 장관 후보자는 강남의 아파트를 산 뒤 “실제 거주했다”고 답변했지만 아파트를 사서 거주한 주민이 “무슨 소리냐. 내가 살았다”고 증언해 사퇴했다. 정성근은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없었다”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지 않았다.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논문 표절로 비롯된 부정직의 문제가 거짓말과 은폐 의혹으로 이어지면서 낙마했다.

실수는 실수일 뿐, 실패는 아니다. 그러나 간혹 실수가 실패로 이어진다. 실수는 회복이 가능한데도 제2, 제3의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려다 사태를 악화시키고 치명상을 입는다. 채동욱이 사생활의 잘못을 시인하고 가족에게 용서를 구한 뒤 검찰총장의 공적 업무 수행에 전념했다면 사태 전개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최소한 세상과 등지고 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성근도 애초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자중했다면 낙마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거짓말이 날카로운 칼이 돼 이 사람들의 몸을 벤 것이다.

채동욱, 정성근에 비해 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의 의혹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는 24살에 순경으로 들어가 간부후보생을 거쳐 31살에 경위에 임용된 뒤 경찰의 최고위 후보 자리까지 오르면서 쉽지만은 않은 인생사를 겪었다. 그가 음주운전 사고를 낸 것은 간부가 된 지 4년 후다. 23년 전 1993년 만취 상태로 다른 두 대의 승용차를 들이받아 대파시켰다. 자신의 차도 폐차시킬 정도로 큰 사고였다.

누구나 젊은 시절 저지를 수 있는 실수였다. 음주운전을 하다 발각되면 낭패감, 후회로 뒤범벅이 돼 온몸이 무너져내린다. 이철성은 음주에다 사고까지 냈으니 오죽했겠는가. 그가 음주 사고를 낸 뒤 “정신이 없었다”고 말한 것은 이해가 된다. 경험칙에 따르면 진실에 가깝다. 그러나 “부끄러워서 경찰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 대목은 의혹으로 남는다. 되레 경찰 신분을 내세워 사고의 파장,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그 시대엔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이어서 기자들도 음주운전과 교통신호 위반 적발 시 신분을 공공연히 밝히면서 ‘혜택’을 입었다. 어쨌든 그는 벌금 100만원의 약식기소로 수습했다. 징계를 받지 않았던 덕이다.

사고를 내기 전 같이 술을 마신 부하 경찰관도 여럿 있다고 한다. 그들도 쉬쉬했다는 것이다. 피해자와 사고를 처리한 교통경찰관 등 등장 인물이 이리 많은데 경찰 신분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조직적인 공모 없이는 불가능하다. 젊은 날의 실수는 용납될 수 있다. 그러나 실수를 덮기 위해 제2, 제3의 거짓을 꾸몄거나, 공모 내지 조직적인 은폐 시도가 있었다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건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나는 잘못하면서 남보고 잘하라고 요구하다간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 시대다. 이철성의 처지는 “나는 바담 풍 할 테니 너희들은 바람 풍으로 해라”라고 우기는 꼴이다. 경찰 총수 후보자가 출발점에서 심각한 신뢰의 위기에 직면해 비틀거리고 있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이르면 오늘 이철성에게 경찰청장 임명장을 준다고 한다. 산천은 의구한데, 박 대통령의 인사원칙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주변에 온통 ‘우리 편’만 가득하다.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과 치안비서관을 지낸 그는 대한민국을 정쟁의 늪으로 끌고 가는 우병우 민정수석과 가깝다. 우병우가 검증하면서 이철성의 흑역사를 덮어주었다는 얘기가 나돈다. 그렇다면 이철성은 우병우에게 충성을 다할 수밖에 없다. 이철성 경찰청장 시대가 개막되면 검찰, 국정원, 경찰에 걸쳐 우병우 사단은 더욱 강력해진다. 우병우는 가히 무소불위가 되는 것이다.

3년 전 채동욱을 들어낼 때 청와대와 조선일보는 동지적 관계였다. 그러던 둘 사이의 관계는 청와대 관계자가 우병우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를 겨냥해 ‘부패 기득권 세력의 청와대 흔들기’라고 규정할 정도로 적대적으로 반전됐다. 이런 정치적 격동의 한가운데에 우병우 민정수석이 있다. 그래서 그의 사람인 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를 삐딱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을 두고서도 ‘부패 기득권 세력의 청와대 흔들기’라고 난도질 할까 봐 좀 걱정은 된다.

백영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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