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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흔들리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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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23 21:42:15 수정 : 2016-08-23 21: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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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논란=정권 죽이기’
집단사고 현상 뚜렷
측근들만 남은 순장조
임기말 고립 키울 우려 커
‘김영란법’으로 유명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남편인 강지원 변호사는 지난 18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을 때 ‘쓴소리 특별고문’ ‘원로 쓴소리 신고센터’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대통령이 쓴소리를 듣지 않아 불통 국정이 되니 시중의 쓴소리를 전달하는 직책을 별도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마이너 후보의 튀는 아이디어이긴 했지만 실제 노무현 당선인 시절에도 ‘쓴소리 비서관’을 두자는 논의가 있었다. 국민소통비서관으로 이름은 바뀌었어도 취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명박 청와대는 광우병 파동과 6·2 지방선거 참패 후 국민소통비서관을 신설했는데 지금도 같은 이름의 직책이 남아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여러 단체들의 의견을 듣고 민원을 검토하는 게 주 업무다. 사실 비서관급이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전달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쓴소리만 전담하는 직책을 만들자는 것도 그만큼 대통령 귀를 잡고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를 하기 힘든 청와대 문화 탓이다. 참모들과 맞담배를 피웠다는 노무현 청와대도 임기 내내 불통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광우병 트라우마’에 시달린 이명박 청와대는 반대 진영과의 소통에 인색했다. “임기 말로 갈수록 대통령은 ‘역사적 평가를 받겠다’는 데 ‘아니되옵니다’라고 말하긴 힘들다.” 한 MB맨의 전언이다.

황정미 논설위원
우병우 민정수석 비위 의혹에 대한 박근혜 청와대 반응을 보면 ‘마이웨이’의 결기가 느껴진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 특감에 착수했을 때, 이 감찰관이 검찰에 수사 의뢰서를 보냈을 때 솔직히 우 수석 거취 표명이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했다. “우병우 논란의 본질은 임기 후반기 정권을 흔들어 식물정부를 만들겠다는 의도”라는 익명의 청와대 반응이 나오기 전에는 말이다. 대통령 뜻과 다른 청와대 참모의 코멘트가 나간 일이 없다는 점에서 이 발언에는 박 대통령 의중이 실렸다고 본다.

현 정부에서 불통 시비가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이번 논란의 파장은 다르다. 우병우 개인에 대한 의혹 제기를 정권에 대한 전면전으로 간주한 데다 임기 종반에 접어든 시점이다. 외부 여론에 대한 민감성은 떨어지고 내부 결속이 두드러지는 때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레임덕(임기말 증후군)을 인정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 임기는 1년6개월 남았지만 대선 기준으로는 1년3개월여 남은 셈이다. 지난 4·13 총선을 거쳐 청와대 개편, 16일 개각으로 대통령과 임기 마지막을 같이할 비서진도 정해졌다. 흔히 ‘순장조’로 불리는 이들이다. 안보 라인을 책임지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창조경제 사령탑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우 수석 그리고 ‘측근 3인방’ 비서관이다.

대통령과 정치 공동체인 이들이 다른 의견을 전달하고 설득하길 기대하는 건 무망하다. 지난해 시사저널이 정치평론가, 정치부 기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43명이 대통령에게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핵심 실세로 ‘3인방’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1위는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모시는 정호성 부속비서관이다. 대통령의 ‘아바타’로 불린다. 대통령과 거의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그의 표정을 보면 대통령이 보고 내용에 만족하는지, 않는지 알 수 있다는 거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기자와 통화했다는 녹취록을 보면 “감찰 개시한다고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대통령께 잘 좀 말씀드리라’고 하면서 ‘이거(우 사퇴 등 문제) 어떻게 돼요?’ 했더니 한숨만 푹푹 쉬더라”는 대목이 나온다.

박근혜 청와대의 집단 동조화 현상은 갈수록 뚜렷하다. ‘한 몸’처럼 움직인다.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미국 심리학자인 어빙 재니스가 내놓은 ‘집단사고’ 이론이다. 강한 지도자가 주도하고, 응집력이 강한 조직일수록 의견 일치를 중시하고 반대 목소리를 배척한다는 것이다. 우병우 논란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청와대 선언이 딱 그렇다. 지난 정부에서 임기 말을 지킨 참모들은 대통령의 고독, 고립감이 더 커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깥 여론과의 끈을 놓지 말라는 뜻인데, 아무리 봐도 그 끈을 이을 참모가 보이지 않는다.

황정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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