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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사지로 보낸 신라인
안보 앞에 사익 앞세운 정치인
지도층 도덕적 의무 없이는
국가존속 남북통일 불가능
간절한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1356년 만에 어제 꿈속에서 신라 화랑 관창을 만났다. 얼굴은 열여섯의 앳된 소년 그대로였지만 그에게선 범접할 수 없는 기개가 흘렀다. 죽은 관창에게서 산 화랑정신이 느껴졌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보던 분을 이렇게 뵙다니! 꿈인지, 생시인지요?” “헛헛! 꿈이오, 꿈. 그러나 현실보다 더 생생한 꿈일 테지. 대관절 이 사람을 만나려 한 까닭이 무엇이오?” “화랑께서 통일한 이 나라가 지금 반 토막이 나 있습니다. 남북통일을 실현할 혜안을 빌리고자 찾은 것입니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관창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마 통일전쟁이 한창이던 옛날 자신의 시대를 떠올린 것이리라. 660년 황산벌에서 백제의 결사대와 맞선 신라군은 패배를 거듭했다. 그러자 김유신 장군의 동생 흠순이 아들 반굴을 불렀다. 반굴은 “나라에 목숨을 바쳐라”는 아버지의 명을 좇아 혼자 적진으로 달려가 최후를 맞았다. 뒤이어 진골 귀족인 품일 장군이 아들 관창을 적진으로 보냈다. 결국 관창은 말안장에 머리만 매달린 채 돌아왔다.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를 잡은 채 말했다. “내 아들의 얼굴이 살아 있는 것 같구나. 나랏일을 위해 죽었으니 후회가 없으리.” 신라군은 그 기세를 몰아 백제군을 물리친다. 약소국 신라가 당나라와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나중에 당나라군까지 몰아낸 것은 지도층의 정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윽고 화랑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일찍이 지도층이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않는 나라가 강대국이 된 적이 없소. 나는 하늘나라에서 많은 국가의 장수와 병사들을 만날 수 있었소. 로마제국과 미국, 영국, 조선의 사람들에게서 숱한 이야기들을 들었소. 로마에선 전쟁이 나면 귀족과 부유층이 앞장섰다고 하오. 영국은 상류층 학교인 이튼스쿨 출신 2000여명이 1,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소. 미국도 예외가 아니오. 6·25전쟁 때 목숨을 잃거나 부상한 장성의 아들이 35명이나 된다고 하잖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꼭 그런 강대국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소! 지도층의 의무는 국가 존속의 기본요건이오. 1967년 여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에 전쟁이 터졌어요. 작은 이스라엘이 6일 만에 큰 나라의 무릎을 꿇렸지요. 전쟁에서 많은 사상자가 났지만 두 나라 간에 확연한 차이점이 있었어요. 이집트에선 사상자가 대부분 사병이었던 반면 이스라엘에선 거의 다 장교였습니다. 장교들이 맨 앞에서 싸운 것이 승리의 비결이었던 거지요.”

관창은 우리 역사에서도 지도층의 자세에 따라 나라의 흥망이 갈렸다고 역설했다. 지도층의 정신이 살아 있었던 고구려와 신라는 수십만의 외적을 물리쳤지만 양반층이 병역을 외면한 조선은 고작 3만의 후금 군대에 무너졌다고 말했다. “지금 대한민국에선 ‘헬 조선’이라는 용어가 유행한다고 들었소. 나라가 지옥이라니! 대체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되었소. 조선 양반들처럼 병역을 회피하고 탐욕을 일삼는 지도층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오.”

화랑의 목소리엔 노기가 서려 있었다. 지도층의 타락을 꾸짖는 대목에선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기까지 했다. 천년이 지났지만 화랑의 애국 혼은 살아 있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것도 따지고 보면 지도층의 타락 때문이오. 정치인들이 나라의 안위는 안중에 없이 국민 감정을 부채질하고 있으니!”

“부끄럽습니다. 후손의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낍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화랑이 말했다. “한 말씀만 더 드리지요. 통일은 대박이 아니오.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지 않소? 귀한 것을 손에 넣고 싶으면 그것을 위해 먼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법이오. 신라 지도층이 무엇 때문에 자식의 목숨을 사지에 내던졌는지 생각해 보시오.”

날이 밝아오자 화랑 관창은 지도층 의무의 화두를 던지고 표표히 사라졌다. 북한이 또 미사일을 쐈다. TV를 틀었다. 사드 문제로 들끓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뉴스 화면을 스쳤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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