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광형의 미래학 향연] 엉뚱한 질문·유쾌한 상상… ‘호모 퀘스처너’의 세상 속으로

입력 : 2016-08-25 20:47:35 수정 : 2016-08-25 23:10:1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6> 미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필자는 이번 여름 학기에 새로운 교육 실험을 했다. 작년에 이어서 두 번째로 ‘미존’(未存)이라는 수업을 개설했다.

미존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은 미존이 아니다. 이미 어느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상상됐던 개념은 미존이 아니다. 아무도 상상해 보지 않는 사물이나 새로운 개념을 미존이라 말한다. 내가 개설하는 미존 수업시간에는 오직 미존만을 말하는 시간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말하면 안 된다.

이 교실에서는 교수가 가르치지 않는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수많은 미존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교수는 그럴 능력도 없고 교육 목적에도 어긋난다. 교실에 모인 교수와 학생은 모두 다 어떤 내용을 다룰지 모른다. 일단 모여서 머리를 쥐어짜 보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교수와 학생이 자신이 생각하는 미존을 하나씩 말한다. 듣는 사람은 그것에 대해 질문은 하지만 비판하면 안 된다. 비판은 우리의 상상력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즉 미존의 교실에는 ‘상상’과 ‘질문’만 존재한다. 

그림=권기현 기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미존(未存) 교실


물론 미존의 수업 방식도 미존이다. 첫날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냐고 물었다. 나는 미존이라 답헸다. 미존이기 때문에 우리 서로 좋은 아이디어를 내보자 했다.

어떤 날은 서서 수업을 했다. 그 다음 날은 앉아서 수업을 했다. 둘러 앉아 마주보며 수업하기도 했다. 미존이라서 학생들도 갖가지 새로운 수업 방식을 제안했다. 거꾸로 물구나무서서 수업해보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학교 수업이기 때문에 끝에 점수는 주어야 한다. 미존 수업답게 점수도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까지 깨뜨릴 수 없었다. 이 시간에는 정말로 이상한 말을 하는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는다.

미존이라는 이상한 수업의 아이디어도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나왔다. 2014년 어느 날, 몇 명의 학생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세상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몇 년 후에는 지금 상상하지 않는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현재 존재하지 않지만, 앞으로 현실이 돼질 것들을 뭐라고 부를까 이야기했다. 먼저 영어로 Non-existing object라고 불러봤다. 한국어로 바꾸니 미존(未存)이 떠 올랐다. 멋진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래(未來)는 아직 오지 않는 것을 말한다. 미생(未生)은 바둑에서 아직 살지 않은 바둑알을 말한다. 미존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미존을 연구하는 수업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존이라는 수업의 제목을 정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얼굴에 번지는 기쁨을 확인했다. 그리고 2015년 여름에 특강으로 수업을 개설해봤다. 인생에서 가장 멋진 교실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에 다시 개설했다. 20명 정도가 수강신청을 했다.

◆인간의 친구 ‘로벗’

이 수업시간에는 모두의 머릿속에 구속을 벗어 던져야 한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자신 스스로 쳐놓은 제약사항에 의해 구속받는다. 이러한 구속을 벗어나서 말하는 것이다.

가장 이상한 기묘한 상상을 말하는 학생이 최고다. 그러다 보니 로봇공화국의 헌법을 제안하는 학생도 있고, 로봇의 노동조합 규약을 만드는 학생도 있다. 우주의 화성에서 집을 짓는 기술에 대해 상상하기도 한다. 화성은 공기도 없고 중력이 지구와 다르기 때문에 건축 기술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식사 대신에 알약 몇 개만 먹으면 영양 섭취가 되는 기이한 약도 나왔다. 일방통행의 전파수신이 아니라, 양방향 송수신 가능한 TV 아이디어도 나왔다. 1000년 후에는 현재 가족 형태의 출산 육아 방식에서 벗어나 공공기관에서 대량 출산 양육하리라는 상상도 해봤다. 미존 시간에는 이런 황당한 말을 해도 된다.

나는 로봇을 ‘로봇’이라 부르지 말고 ‘로벗’이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제 우리는 로봇과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로봇을 친구처럼 가족처럼 동료처럼 대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인공지능(AI ) 로봇을 더 잘 활용하고 더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로봇의 도움을 더 잘 받을 것이다. 그러면 로봇과 친하게 지내며 잘 활용하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마치 현재 대인관계력이 좋은 사람이 높은 평가를 받는 현상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니 미리 로봇을 기계로 인식하지 말고, 의인화해 ‘로벗’이라 부르면 좋을 것 같다. 마음 속에 로봇을 ‘벗’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대로봇관계력’이 좋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인간은 상상하고 창조하는 역할

미래 인간과 AI 로봇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인간과 로봇이 서로 돕고 의지할 것이다. 공생은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서로 보완해주는 협동을 하게 될 것이다. 이미 21세기 초에 로봇은 인간보다 계산력과 기억력은 말할 것도 없이, 주어진 데이터에서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는 추론능력도 뒤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인간과 바둑 대결에서는 변칙을 두어서 인간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AI 로봇이 인간을 추월하지 못하는 능력은 창조하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상상을 해야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수 있고, 상상을 해야 만들고자 하는 미래가 구체화된다.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상상돼보지 않은 미래는 현실화될 수 없다.

그런데 상상을 촉발시키는 다시 강력한 무기는 질문이다. 질문을 하다보면 생각이 질문의 방향으로 이동한다. 생각이 이동한다는 것은 생각이 현실을 떠난다는 말과 같다. 현실에서 떠나면 나의 영혼은 자유롭게 유영을 한다. 자유를 찾은 영혼은 자유롭게 상상을 한다. 곧 질문이 나를 현실고착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뭔가 상상한다는 것은 어떤 사물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사물이나 개념의 윤곽을 정의하는 셈이다. 사물과 개념을 정의한다는 것은, 그것에 관련된 여러 요소를 찾아 정의하고 그것들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상 사물에 대해 질문을 해봐야 한다. 질문을 해야 대상 사물이 구체화되고, 질문을 해야 관련 요소가 명확해진다. 그리고 이와 같이 명확히 정의되는 것만이 나중에 현실로 구현될 수 있다.

◆질문하는 인간 ‘호모 퀘스처너’

상상은 질문에서 촉발되기 때문에, 질문을 하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고 사물을 명확히 정의할 수 있다. 상상되지 않는 것은 실현될 수 없기에,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미래를 창조할 가능성이 크다. 바꾸어 말하면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미래를 창조하고 미래의 주인이 될 것이다.

특히 미래 AI사회에서 인간의 역할은 창조하는 일일 것이다. 당연히 창조를 잘 하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할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를 주름잡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은 20년 전에 존재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 회사의 창업자들은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질문을 하고 상상하고 창조한 사람이다. 앞으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나는 질문을 잘 하는 사람을 ‘호모 퀘스처너’(Homo-questioner)라 부르고 싶다. 호모 사피엔스 중에서도 질문과 상상 능력이 출중한 호모 퀘스처너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 생각된다.

인간과 동물의 진화 역사를 보면 환경 적응에 우월한 종족이 종족보존에 유리하다. 세상을 지배하는 퀘스처너는 종족보존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재 출산율 저하 현상을 보면, 1000년 후에는 현재와 같은 결혼에 의한 출산방식이 주류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공공기관에서 대량으로 번식시키는 시대가 올 수 있다. 당연히 우수한 유전자가 선호될 것이다. 질문하지 않고 상상하지 않고 창조하지 못하는 사람의 유전자는 선호되지 않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퀘스처너의 유전자가 널리 퍼질 것이다.

결국 우리의 미존 교실에서는 1000년 후 지구의 주인이 돼 있을 호모 퀘스처너를 양성하는 셈이다. 모든 구속을 던지고 상상해보는 미존 교실은 유쾌하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