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영남의월요일에읽는시] 유리(琉璃)의 길 3

관련이슈 월요일에 읽는 시

입력 : 2016-08-28 22:27:54 수정 : 2016-08-28 22:27:5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이기철(1943~)
개미를 보면 나는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나비를 보면 나는 너무 많은 약에 길들였다라는 생각이 든다
잔디를 보면 냉이꽃을 보면 나는 너무 많은 봄을 놓쳐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나생이 둥굴레풀 꽃다지 민들레
고사리 우엉잎 도꼬마리 이질풀
아, 나는 너무 많은 이름들을 놓쳐버렸다

구름을 보면 나는 아직도 내 앞에 걸어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강물을 보면 파도를 보면 나는 아직도 내 앞에 출렁거릴 것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영남 시인
성찰의 시선은 일상 시선과 다르다. 내부로 향한다.

시의 성찰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앞만 보며 허둥댈 때 시로 조용히 자신의 일을 반성하며 깊이 살피는 것. 윤동주의 시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성찰의 힘 때문이다.

인용시 ‘유리의 길 3’도 시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다. 개미, 나비, 들풀들 이런 것들을 보고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구름, 강물, 파도를 보고 앞날을 생각하는 내용이다.

누구나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소재들이지만 성찰의 촉수가 흔하지 않는 모습과 내용으로 닿아 있다. 분위기도 시인의 목소리만큼 차분하면서 포근하다.

다 읽고 나니 그가 운영하는 서재 ‘여향예원’ 가는 길이 떠오른다.

경북 청도에 있는데 대구에서 비슬산을 거쳐 여기에 이르는 전경이 시인의 시처럼 아름다웠다.

특히 들꽃과 사과밭과 감나무와 아침 안개가 어우러진 가을풍경이 떠오를 때면 ‘나도 청도군 각북면 낙산길로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김영남 시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