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쿠바 꺾고 슈퍼라운드로… ‘변방의 반란’ 주역 되다

관련이슈 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입력 : 2016-09-05 19:16:02 수정 : 2016-09-05 21:45:3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세계 여자야구 월드컵서 돌풍 이끄는 두 태극낭자 화제 지난 1일 한국 여자야구월드컵대표팀의 막바지 훈련이 한창이던 부산 기장군 현대자동차 드림볼파크. 아마추어 여자 야구선수 8명과 소프트볼선수 12명으로 꾸려진 대표팀은 서로를 ‘언니, 동생’이라 부르며 친근한 분위기 속에 몸을 풀었다. 선수 대부분은 본업이 따로 있어 개막(3일) 직전인 지난달 31일에야 첫 훈련을 실시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광환(68) 대표팀 감독은 “선수가 없다”며 혀를 끌끌 찼다. 이 감독은 “야구선수들이 전반적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소프트볼선수들은 베이스 러닝 등 야구 규칙을 처음부터 가르치고 있다”며 웃었다.

‘야구에 미친 여자들’이 2016 세계여자야구월드컵에서 예상밖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약체로 분류됐던 대표팀은 지난 3, 4일 각각 열린 조별리그 1차전 파키스탄(10-0)과 2차전 쿠바(4-3)를 차례로 제압하며 12개 출전국 중 상위 6개국이 나가는 슈퍼라운드 진출을 확정했다. 투타를 겸업하며 몸을 아끼지 않는 ‘천재소녀’ 김라경(17·계룡고)과 일본 소프트볼 1부리그 출신 귀화선수 배유가(27·경남도체육회)의 활약이 특히 돋보인다는 평가다.

김라경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대표팀 막내 김라경은 시속 110㎞에 육박하는 공을 던지는 강속구 투수다. 세계여자야구 정상급 투수의 구속은 120㎞대다. 김라경은 파키스탄전에서 특유의 속구와 낙폭이 큰 커브를 활용해 1.1이닝을 퍼펙트로 틀어막으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강팀 쿠바를 상대로도 2.1이닝 동안 1실점만 내주는 짠물 투구를 펼쳤다.

동그란 안경을 쓴 앳된 얼굴의 김라경은 키가 163㎝로 큰 편은 아니다. 하지만 다리를 쭉 펴는 와인드업 이후 하체 중심을 유연하게 이동하는 투구폼이 여느 남자프로선수 못지않다. 그는 “부모님이 모두 학창시절 동아리에서 운동을 하셨다. 아버지는 역도, 어머니는 핸드볼 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 두 분의 힘을 물려받은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김라경은 어릴 때부터 지금은 프로야구 선수가 된 오빠(한화 김병근)를 따라 야구장을 찾다가 야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김라경은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계룡리틀야구단의 유일한 여자선수로 이름을 올리며 남자선수들과 똑같은 훈련을 받았다. 오직 야구를 하고 싶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김라경은 지난해 방송을 타며 야구 ‘천재소녀’로 소개된 이후 프로야구 시구까지 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김라경은 “지난해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한국에 여자야구 실업팀이 없기 때문에 운동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SNS 계정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는 팬들이 많아 마음을 다잡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선수로 해외에 진출할 생각은 없다. 국내에 남아 대학 체육교육과에 진학해서 여자야구 인프라를 넓히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배유가
대표팀 ‘4번 타자’ 배유가는 투타 모두 에이스 역할을 도맡는 살림꾼이다. 배유가는 파키스탄전에서 3타수 3안타 2타점 3도루의 맹타를 휘둘렀다. 특히 배유가는 쿠바전에서 마지막 투수로 나와 1.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팀이 1-3으로 밀리던 6회엔 역전의 시발점인 안타까지 기록하며 홀로 투타 쌍끌이 활약을 펼치는 기염을 토했다.

배유가는 재일교포 3세로 언니 배내혜와 함께 2014년에 한국 국적을 택했다. 일본에서 소프트볼 1부리그 선수로 활약하던 배유가에게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둔 황창근 소프트볼 대표팀 감독이 귀화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그의 언니 배내혜는 일본 국가대표 소프트볼 선수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소프트볼 자매’는 현재 모두 한국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배유가는 현역 선수로, 배내혜는 소프트볼 코치로 활동 중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배유가는 아직 한국 문화에 익숙지 않다. 한국어를 듣고 이해하는 것은 원활하지만 아직 말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휴일마다 한국 책과 영화를 틈틈이 보며 한국어를 익히고 있는 배유가는 “언니를 비롯해 가족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된다. 일본에 계신 부모님도 이번에 경기를 보러 기장까지 방문했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반드시 잡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여자야구는 척박한 토양 속에서 근근이 명맥만 이어왔다. 여자야구의 인적 인프라는 전국 40여개의 아마추어팀이 전부이며, 이들은 모두 동호회 수준이다. 한국여자야구연맹(WBAK)도 2007년 창립돼 채 10년이 안 됐다. 선수들은 부족한 지원 속에서 생업과 병행할 수밖에 없다. 파키스탄전 선발투수로 나선 강정희(30)는 초등학교 선생님이고, 주장이자 안방마님인 곽대이(32·양구블랙펄스)도 직장인이다.

두 선수는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여자야구의 저변이 넓어지길 기대했다. 배유가는 “일본은 여자야구 프로 4팀이 전국을 돌며 경기를 한다. 한국도 여자야구 운동환경 개선을 통해 더 많은 선수들이 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라경도 “선수들이 직장을 다니면서도 국가대표라는 책임감 때문에 운동을 포기하지 않는다. 앞으로 여자야구에 뜨거운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대표팀은 7일부터 열리는 슈퍼라운드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노린다. 한국이 지금까지 거둔 최고 성적은 8개국이 출전한 2008년 일본 대회의 6위다.

기장=안병수 기자, 사진 남제현 기자 rap@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