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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택의新온고지신] 추풍병욕소(秋風病欲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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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07 21:10:57 수정 : 2016-09-07 21: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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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이 짙어지고 있다. 아침저녁 조금은 선선해진 초가을 바람 속에서 염천(炎天)을 견뎌온 사과며 대추, 산수유를 비롯한 갖가지 열매의 채색은 자연의 오묘함을 느끼게 한다. 연향 가득 머금은 연실(蓮實)은 또 그 얼마나 탐스러운가.

계절의 순환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산책이라도 하면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소소한 데 있음을 새삼 눈뜨게 한다. 삼라만상 속에 내가 있듯 행복은 또 다른 나인 남과 더불어 만들어가는 것임을 또한 깨닫게 된다.

내 괴로움이 남의 괴로움일 수 있다는 것, 그것부터 차근차근 생각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 속에 인연되어진 사람들과 현상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면서 앞서 삶을 산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친다.

조선 선조 때 여류시인으로서 중국과 일본에서도 필명을 인정받는 허난설헌의 시 ‘연밥을 따며(採蓮曲)’를 보자. 가을이라는 계절적 배경 속 남녀 간 연정이 물씬 배어 있는 시제(詩題)에 공명이 크다.

“가을 맑아 긴 호수 푸른 옥 흐르고(秋淨長湖碧玉流)/ 연꽃 피어 깊은 곳 놀잇배 매여 있네(荷花深處繫蘭舟)/ 임을 만나 물 너머 연밥을 던지니(逢郞隔水投蓮子)/ 이웃에 소문나 반나절 부끄러움만 타노라(遙被人知半日羞)”

사실 가을은 서늘한 날씨와 추수라는 상징어가 말하듯 한 해의 결실을 거두는 의미에서 멀리 떠나온 고향도 떠오르게 한다.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문학에선 가을날 고향을 생각하는 정회가 진하다. 시 ‘강한(江漢)’을 맛보자.

“장강과 한수를 떠돌며 고향 그리움 깊으니 천지간에 답답한 선비로구나(江漢思歸客 乾坤一腐儒)/ …/ 석양에도 마음은 여전히 벅차오르고 가을바람에 병마저 나아지려 하네(落日心猶壯 秋風病欲蘇) ….”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사람냄새 물씬 나는 넉넉한 한가위가 됐으면 한다. 만월(滿月)처럼!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원장

秋風病欲蘇 : ‘가을바람에 병은 오히려 물러간다’는 뜻.

秋 가을 추, 風 바람 풍, 病 병 병, 欲 하고자할 욕, 蘇 되살아날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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