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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Sports] 병마 없는 천상으로… 영원한 롯데맨 유두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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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08 19:26:56 수정 : 2016-09-08 19: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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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째를 맞은 프로야구에서 1984년 한국시리즈는 최고의 명승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의 대결은 초기 프로야구 흥행에 한몫을 단단히 했다. 이 시리즈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야구의 모든 극적인 요소를 다 갖췄다.

당시 한국시리즈에선 전·후기 우승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다. 이미 전기에 우승을 차지해 비교적 여유만만했던 삼성은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만만한 롯데를 골랐다. 한국시리즈에서 롯데를 비교적 손쉽게 제압해 처음 왕좌를 차지하겠다는 계산이었다. 이에 삼성은 롯데의 후기 우승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했다. 많은 팬들은 삼성의 ‘밀어주기 작전’을 비난했다. 당시 삼성의 전력은 롯데에 비해 워낙 압도적이었고, 팬들은 약자인 롯데를 동정하고 응원했다.

들러리 취급받던 롯데는 예상된 열세를 뒤집고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극적으로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7차전을 벌이는 동안 한 팀의 연승은 없었다. 롯데의 에이스 최동원은 괴력을 떨치며 한국시리즈 7경기 가운데 5경기에서 마운드에 올라 혼자 4승을 책임졌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한 주인공은 7차전 8회초 3-4로 뒤진 상황에서 삼성의 재일교포 출신 좌완 김일융을 상대로 좌측 담장을 넘기는 역전 3점 홈런 한 방으로 승부를 가른 최동원의 2년 선배 유두열이었다. 이 3점포 한 방의 임팩트가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유두열은 한국시리즈에서 1할대 타격에 허덕이다 단 한 방으로 롯데에 프로야구 첫 우승을 안겼다. 그는 MVP에 선정되고 나서 “최동원 때문에 내가 MVP가 됐다”며 공을 후배에게 돌렸다.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느라 1983년 최동원과 함께 28살 때 프로에 뒤늦게 데뷔한 유두열은 ‘굵고 짧게’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오로지 야구 외길 인생을 걸었다. 경남 마산의 월포초등학교 때부터 약 45년간 배트와 벗해왔다. 10여년간 프로야구 코치를 거쳐 김해·속초·포항·안양·청주 등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고교에서 꿈나무를 키웠다. 제자들에게 기술은 물론 늘 의리와 신의를 중시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는 몇 해 전 신장암 진단을 받았지만 앞서 암과 싸웠던 최동원, ‘타격 천재’ 장효조가 그랬듯 투병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않았다. 승부사들에겐 눈앞의 상대가 아니라 몸 안에 보이지 않은 병마와 싸워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굴욕으로 여겼던 것일까.

암 투병 중이던 그는 지난 4월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16시즌 개막전에서 팬들 앞에 마지막으로 섰다. 왕년에 호쾌하게 스윙하던 전성기 때의 모습 대신 백발의 노쇠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롯데에서 현역 시절 달았던 33번 유니폼을 입고 팬들 앞에서 소리쳤다. “롯데 자이언츠 야구 선수 유두열입니다!”

은퇴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그의 마음은 영원한 현역이었다. 그는 유니폼을 벗고 나서도 자신이 롯데의 첫 우승을 일궈낸 주역임을 자랑스러워했고, 롯데의 성적이 밑바닥을 헤맬 땐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고 한다. 비록 은퇴했지만 그는 롯데 선수였다. 병마와의 싸움에서 끝내 져 지난 1일 타계한 ‘영원한 롯데맨’인 그가 생전에 보여준 소속 팀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은 귀감이 될 만하다. 자신이 오래 몸 담은 곳을 돈 한푼 더 받겠다는 이해관계에 따라 헌신짝 버리듯 하는 요즘의 ‘황금 만능주의’를 비웃었던 그였다.

야구 팬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명장면을 선사한 3점 홈런의 사나이 유두열이 5년 전 이맘때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후배 최동원과 병마가 없는 천상에서 즐겁게 야구놀이를 하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박병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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