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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현기자의역사항쟁지다시보기] 알마티서 호국의 넋이 된 황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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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08 21:13:53 수정 : 2016-09-08 21: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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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알마티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루스쿨로바 공동묘지에는 낮선 이름이 적힌 묘가 있다. 독립군 출신으로 한인 집단농장 콜호즈의 지도자이자 교육자였던 황운정의 유해가 묻힌 곳이다. 묘비 앞면은 러시아어로, 뒷면은 한글로 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황운정(1899~1989)은 1899년 함북 온성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함북 종성과 온성에서 3·1운동에 참가했다. 이로 인해 일경에 쫓기던 그는 이듬해 3월 북간도로 망명했다. 곧바로 최진동이 이끄는 독군부에 들어가 활동했다.

적백내전으로 불리는 러시아 내전 당시에는 연해주 솔밭관부대의 간부로 활약했다. 러시아 내전이 끝난 1923년 이후에는 한인 콜호즈에서 지도자이자 교육자로 한인들을 이끌었다. 이어 1935년 스탈린 대탄압 당시 일본을 위해 간첩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3년형을 선고 받았다. 이로 인해 그는 1938년 11월까지 카자흐스탄 카라간다에서 수용생활을 해야 했다.

황운정이 그토록 경멸하던 일본 때문에 러시아에서 영어의 몸이 됐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카자흐스탄 루스쿨로바 공동묘지에 있는 독립운동가 황운정의 묘. 한글과 러시아어로 된 묘비가 눈길을 끈다.
1958년에 복권·복당된 후 경제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1989년 그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눈을 감았다.

묘 옆에는 10년 후 그를 따라간 부인 황베라 알렉산드라(1905~1979)가 잠들어있다.

황운정의 묘비 전면에는 러시아어로 “Kvan Un-Den 황운정 1899. 9. 11~1989. 12. 31 혁명가 빨치산 연맹 차원의 의의를 가진 개인연금자”라고 새겨 있다. 묘비 뒷면에는 한글로 “황운정 선생의 묘 1899. 9. 11 함경북도 온성에서 나시어 기미년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1989. 12. 31 알마아타(알마티)에서 타계하시다. 1992. 8. 10 아들 황까를·황마이, 딸 황마리아 세움”이라고 쓰여 있다.

이 글을 연재하면서 잊혀져가는 독립운동가를 만날 때면 늘 가슴이 아팠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아직도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이역만리 구천를 떠돌고 있다.

여기에 비춰 보면 황운정은 후손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 손에 의해 묘비가 세워지고, 때때로 찾아가 헌화하는 가족이 있다고 여기니 모처럼 가슴 뿌듯함이 밀려온다.

류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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