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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의월요일에읽는시] 유배시첩 - 남해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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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11 21:55:47 수정 : 2016-09-11 21: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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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1963∼)
물살 센 노량해협이 발목을 붙잡는다.
선천서 돌아온 지 오늘로 몇 날인가
윤삼월 젖은 흙길을
수레로 천리 뱃길 시오리
나루는 아직 닿지 않고
석양에 비친 일몰이 눈부신데
망운산 기슭 아래 눈발만 차갑구나
내 이제 바다 건너 한 잎
꽃 같은 저 섬으로 가고 나면
따뜻하리라 돌아올 흙이나 뼈
땅에서 나온 모든 숨 쉬는 것들 모아
화전을 만들고 밤에는
어머님을 위해 구운몽을 엮으며
꿈결에 듣던 남해바다
삿갓처럼 엎드린 앵강에 묻혀
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


필자에게 시인으로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풍경 3곳을 추천해보라 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싶다. 전북 부안에 있는 모항해변길, 전남 진도에 있는 세방낙조길, 경남 남해 다랭이마을에 있는 남면길. 이 중에서 앵강만이 눈부시게 들어오는 남면 해안길을 가장 아름다운 바다풍경으로 꼽을 것이다. 

김영남 시인
인용시는 고대소설 ‘구운몽’으로 유명한 서포 김만중을 소재로 한다. 서포는 숙종 때 세자책봉 문제로 귀양살이를 하게 되는데, 바로 여기 앵강만 노도라는 섬으로 유배돼 시와 소설을 쓰며 여생을 마친다. 이 시는 고두현 시인이 서포의 입장이 되어 남해로 유배 가는 귀양자의 심경을 노래한다. 착찹한 마음이 잘 반영되어 있어서 시를 읽고 나면 함께 우울해진다.

고두현 시인은 남해 상주 출신이다. 신문기자 신분으로 1993년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인용시가 당선돼 시인의 길을 걷는다. 필자는 오래전 시인과 함께 남해 문학기행을 한 바 있는데 그의 고향사랑, 남해사랑 열정에 크게 충격 받은 바 있다. 그가 일반 독자들에게 남긴 남해 홍보업적은 어느 군수도 필적하지 못하리라 믿는다.

김영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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