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침만큼 부러운 게 밤이다. 많은 미국인은 ‘가족과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낸다. 미국인들은 가족이 아닌 이들과는 좀처럼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다. 여건도 안 되고, 다른 이들과 약속을 잡더라도 식사를 할 뿐 음주는 최대한 자제한다. 술을 마시면 귀가할 교통수단도 마땅찮고, 다음 날 근무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음주사고에 대해서는 불관용이 뿌리를 내린 게 미국 사회다. 음주운전은 더 고약하다.
박종현 워싱턴 특파원 |
별 도리 없이 차 주인에게 알리지도 않고 견인한 차를 200달러 가까운 과태료를 내고 되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소 무리한 조치라고 생각되는 견인이 이뤄진 것은 세수 확충에 나선 카운티의 ‘잽싼 행정’ 때문이었다. 알고보니 카운티의 견인보관소는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카운티 곳곳을 돌며 무허가로 주차한 차량을 즉각 견인하는 초스피드 행정을 펴고 있었다. 반면 운전면허를 발급해주는 교통국(DMV)은 ‘느림보 행정’의 진수다. 한국이라면 방문 당일 발급받을 수 있는 운전면허증을 미국 DMV는 서류 검토 등의 이유로 한 달 넘게 미적거린다. 필자도 신청할 때마다 50일 넘어서야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다. 느림보 행정이나 초스피드 행정이나 모두 시민편의 제공보다는 공급자 중심의 행정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미국 행정의 이중적인 모습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사회 전체를 위해서는 올바른 행정일 수 있다. 9·11 테러범들이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 DMV에서 쉽게 발급받은 운전면허증으로 테러를 기획했다는 사실만 봐도 주민들은 안전을 위해 다소의 불편은 감수할 것이다. 그런 행정 아래선 주민들도 그에 맞는 선택을 하게 된다. 술을 좋아하는 이라면 도심이 아닌 집 근처 식당을 찾게 된다. 미국인들은 자신의 집 근처에서 가족 단위로 가볍게 맥주를 마시곤 한다.
한국에서 원치 않은 술자리도 가져야 했던 경험이 많은 필자는 미국인의 이런 생활은 청정 자연환경보다 부러운 대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오는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환영한다. 이 법은 한국에 복귀할 우리 가족과 이웃에게 예상치 못한 선물을 안겨줄 수 있다. 술자리가 줄어들면 ‘저녁이 있는 삶’이 좀 더 확산될 것이다. 이웃과 교류할 시간도 늘어날 것이고 맑은 아침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동네 가게들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느 금요일 저녁 사춘기를 지난 아이들과 동네에서 커피를 마시고, 토요일 아침 동네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는 맑은 미래를 상상해 본다. 김영란법이 그런 사회를 앞당기는 촉매가 되길 기대해 본다.
박종현 워싱턴 특파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