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진작가 스기모토 히로시의 작품은 그래서 느리고 모노톤이다. 선불교 사상을 사진이미지로 구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사진은 빠르게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쉬었다 가라며 작은 휴식의 창을 건네는 듯하다. 자극적인 색이 모두 빠진 사진에는 물결과 저 멀리 희미해진 수평선만이 이곳이 바다임을 암시하고 있다. 잔잔한 물결과 조용한 하늘, 그리고 그 경계를 허무는 신비로운 안개는 숭고한 새벽의 분위기를 선사한다. 허겁지겁 출근을 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위로가 되는 새벽의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고 있다. 미국 문학사의 초석이 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수상집 ‘월든’에는 이런 글이 있다. “하루하루가 그가 이때까지 더럽힌 시간보다 더 이르고 더 성스러운 새벽의 시간을 담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인생에 이미 절망한 사람이며 어두워져 가는 내리막길을 걷는 사람이다.” ‘사진 철학자’라 불리는 스기모토의 작품은 이 가을 성스러운 새벽의 가치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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