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류영현기자의역사항쟁지다시보기] 영화 ‘밀정’ 실제 모델은 김시현 의사

관련이슈 류영현기자의 역사항쟁지 다시보기

입력 : 2016-09-23 01:17:42 수정 : 2016-09-23 01:17:4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영화 ‘밀정’이 흥행하면서 실존 모델인 의열단원 김시현(1883~1966)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시현은 경북 안동군 풍산에서 태어났다. 아호는 하구(何求)다. 그가 일제의 고문을 받으면서 비밀을 지키기 위해 혀를 깨물었다. 검사가 “도대체 무엇을 구하려는가? 차라리 하구(何求)가 좋겠다”고 빈정댔다. 이후 본래 학우(鶴右)였던 호를 아예 하구로 바꾸어 버렸다. 이 장면은 영화 ‘밀정’에서 배우 공유가 그대로 재현한다. 서울에 있던 중교의숙 중학과정을 마친 김시현은 충주·예천 등지에서 장사를 하기도 했으나 29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 전문부를 거쳐 법학과를 다니다가 1917년 귀국했다.

그는 1919년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했다. 이로 인해 경북 상주에서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었다가 탈옥한 뒤 상하이로 망명했다. 중국 지린으로 가서 항일 무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에 가담했다. 본격적으로 무력광복 활동을 펼친 그는 군자금 마련과 단원 모집을 위해 국내외를 드나들며 거사를 벌이고 체포 투옥되는 일을 광복 때까지 반복했다. 의열단장인 김원봉은 그를 단원 가운데 가장 신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열단이 조직된 중국 지린성 지린시 광화로 57호 일대. 김시현(작은 사진)은 국내외를 드나들며 무력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독립기념관 제공
1920년 김규식·여운형 등과 함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혁명단체대표자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했다. 1920년 9월 의열단이 국내에 들어와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할 목적으로 폭탄을 반입하려다 발각돼 체포됐다. 이로 인해 대구형무소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1년간 복역했다.

김시현이 항일투쟁에 얽힌 일화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23년 일어난 이른바 ‘황옥 경부사건’으로 불리는 폭탄밀반입시도였다. 영화 ‘밀정’은 이 사건을 극화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19년을 감옥에서 보냈던 그는 1952년 백범 암살 배후로 이승만을 지목하여 저격을 모의했다. 1952년 6월 25일 유시태(당시 62세)를 통해 부산에서 이승만을 저격하려던 계획이 발각되면서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후 그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복역하다 1960년 4·19혁명을 계기로 석방됐다.

한 세기가 흐른 뒤 그가 의열단에 가입하기 위해 찾아갔던 중국 지린성 지린시 광화로 일대는 고층빌딩이 들어선 번화가로 변모했다. 이로 인해 의열단이 있던 자리는 정확히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류영현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
  • 이다희 '깜찍한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