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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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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26 23:13:27 수정 : 2016-09-26 23: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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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 해임건의 때는 수용
김재수 해임건의 때는 거부
같은 과정 다른 결론 이유는
정치에 대한 태도 차이 때문
20대 총선 결과 선거혁명이 일어나고 여야가 ‘협치’ 운운했을 때도 반신반의했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문제로 청와대와 여야가 또다시 진흙탕에서 뒹구는 꼴을 보고 있어도 별로 놀랍지 않다. 수십년째 반복되는 그악스러운 좁쌀 정치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그보다 더한 험한 꼴을 본다 해도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해임건의안 통과에 유감을 표하면서 “나라가 위기에 놓여 있는 이런 비상시국에…”라고 했다. 우리의 5000년 역사는 고난 그 자체였다.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가장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고 있다는 최근 50년도 국난의 시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우리 사회의 안보불감증 안전불감증 도덕불감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위기의 시대를 외줄타기하듯 아슬아슬하게 헤쳐나가고 있는 국민 입장에선 정치권의 만성적인 위기불감증만큼 걱정스러운 것이 없다.

김기홍 논설실장
거야의 횡포에 흥분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잠시 진정하고 자신들이 과거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간 펼쳤던 대여투쟁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헌정사를 얼룩지게 했던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의 파란만장한 전사(戰史)는 저주와 폭력, 유혈로 점철돼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를 떠올릴 것도 없다. 13년 전 꼭 이맘때인 2003년 9월 한나라당이 강행한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파동이 그 흑역사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김두관 장관 해임 건의 사유는 한총련의 미국 대사관 기습시위·미군부대 난입 시위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유가 어이없어 ‘해녀가 사고 나면 해수부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는 식으로 한나라당의 막무가내 정치행태를 꼬집는 패러디가 넘쳐났다. 홍사덕 한나라당 원내총무는 “현 제도상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을 직접 규탄할 방법이 없어서 반성을 촉구하는 의미를 담아 김두관 장관이 선정된 것”이라고 실토했다. 김 장관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그러고도 “역대 어느 대통령도 해임건의안을 거부한 적이 없고, 박정희 전 대통령도 받아들였다. 해임안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질서에 대한 정면도전이고 유린인 만큼 좌시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때의 상황은 지금의 상황과 판에 박은 듯 닮은꼴이다. 해임건의 요건도 갖추지 못한 것, 여당 퇴장 속에 다수당의 위력으로 밀어붙인 것, 청와대와 여당의 비분강개, 그리고 쏟아지는 말폭탄들…. 다른 게 있다면 공수가 바뀌었고, 그때의 결론은 ‘해임’, 지금의 결론은 ‘해임 거부’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르겠다. 맞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 그때 김두관 장관이 사표를 내고 노 대통령이 수리한 것은 옳았다. 지금 김재수 장관이 사표를 내지 않고 박 대통령이 해임건의 수용 불가를 결정한 것은 틀렸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온 걸까. 해임건의가 법적 구속력은 없어도 정치적 구속력은 있는 것은 아닌지, 국회 결의를 거부하는 것이 민의와 다수결 원칙의 대의민주주의 정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고민의 깊이 차이에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에 대한 관점, 태도의 다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무현정부는 국회의 위신과 국정의 원만한 수행을 선택했다. 박근혜정부는 다수당의 횡포에 그리고 국민이 선택한 합법적인 정부를 흔들어보겠다는 구태정치에 굴복하지 않는 ‘당당한 정부’에 방점을 찍었다.

20대 총선 결과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선거 탄핵, 국민적 심판이다. 국민이 명령한 여소야대의 엄중한 현실을 박 대통령과 여당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청와대가 내놓은 총선 관련 ‘두 줄 논평’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국민들의 이런 요구가 나타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에서 나타난 청와대 담장 안 인식에 여전히 갇혀 있다.

좋지 않은 역사는 반복되지 않도록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데 우리 정치도 그러지 못했다. 정쟁으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정치 실종의 상태가 계속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기홍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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