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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경주는 계획도시의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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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28 21:57:11 수정 : 2016-09-28 21: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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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 강진이 경주를 덮쳤다. 곧이어 폭우까지 쏟아졌다. 시민들은 가옥 손상 등 많은 피해를 본 가운데 명절을 보내야 했고, 계속되는 여진으로 지금도 불안에 떨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고도(古都) 경주가 품은 수많은 문화재의 피해다.

가장 큰 걱정을 샀던 건 첨성대다. 7세기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첨성대는 이번 지진으로 정자석이 5cm 정도 벌어지고, 북쪽으로 약 2cm 정도 기울어졌다. 구조적인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기록에 따르면 지진은 삼국시대 때 102회, 고려시대 때 169회, 조선시대 때 1800회를 넘었다. 특히 혜공왕 15년(779년)에는 집이 무너지고 100여명이 죽은 대형 지진도 있었다. 첨성대가 수많은 지진을 이겨내고 1400여 년 동안 잘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볼 때 신라인의 건축기술은 신기에 가깝다 싶어진다. 

첨성대가 별자리 관찰 장소로 알려져 있는 점은 경주가 애초 세심한 계획 아래 건설된 도시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신라인들은 북극성과 자오선 관찰을 통해 진북의 위치와 방위를 정확히 파악하여 경주 전 지역을 바둑판처럼 구획하고 도시를 만들었다. 황룡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도로를 두어 사통팔달이었다. 도로 폭은 5∼23m, 필요에 따라 자갈을 다져 만들었고 중앙에는 수레길을, 양쪽으로는 보도와 하수도를 갖추었다.(사진) 창원이 국내 최초의 계획도시라고 알고 있지만, 신라시대에 이미 구획화된 도시를 만들었던 것이다.

고대의 도시계획은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우리 선조들은 이를 뛰어넘어 독자적인 방식을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경주에서 확인한다.

새로운 요소를 생활과 환경, 미적 감각에 맞추어 독특하게 발전시킨 우리 문화의 또 다른 징표인 계획도시 경주는 그 자체로 빼어난 문화자산이다.

이은석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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