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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외국인 관광객 응대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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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02 21:56:05 수정 : 2016-10-02 21: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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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에 있었던 일이다. ‘사건’은 한강 잠수교에서 일어났다. 오래간만에 한강 둔치에서 시간을 보낸 뒤 운동 삼아 잠수교를 걸어서 건너기로 했다. 3분의 2쯤 건넜을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아이들과 노인, 40대로 보이는 남녀가 함께 있는 게 가족 같았다. 지나치려는데 여자아이가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유창하게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들리는 단어는 ‘Chinese’ 하나였다. 길을 잃은 중국인 가족이라는 의미였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사람을 잘못 골랐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중국어를 공부했지만 ‘이얼싼’밖에 모르는 나다. 영어는 ‘아임 파인 생큐’ 이외에는 문장을 제대로 구성하지 못한다. 그 사실을 중국어로, 영어로 알릴 수도 없었기에 난감했다. 고난이 시작됐다.

이도형 정치부 기자
여자아이와 손짓, 발짓을 해보니 홍대입구에 있는 호텔로 가려는 것 같았다. 대중교통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잠수교 근처로는 버스도 없었고, 지하철 환승은 불편했다. 이를 설명할 실력도 되지 않았다. 택시만이 답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여자아이한테 말했다. “Taxi”라고. 알아듣는 것 같았다. 아이가 중국어로 열심히 자신의 가족들에게 설명해 주는 동안 콜택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근처까지 올 택시를 수소문해 보았다. 계속 ‘연결 실패’만 떴다. 당황했다. 문득 한국관광공사로 전화를 해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공사 콜센터 전화번호를 찾은 뒤 전화를 걸었다. 그땐, 그 전화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관광공사 안내원은 자신들이 콜택시를 부를 능력이 안 된다고 했다. 휴일이라 출근한 사람들이 없는 것도 이유라고 했다. 그들이 도와준 것은 중국어로 “택시를 타실 건가요?”라고 가족들에게 물어본 것뿐이었다. 근처 어디에서 택시가 잘 잡힌다거나 대중교통을 어떻게 타고 가면 호텔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은 없었다.

결국 그 중국인 가족들이 호텔로 갈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만난 지 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동안 여자아이의 동생은 울음을 터뜨렸고, 중년의 어머니·아버지는 다투는 것 같았다. 올해 내가 겪은 일 중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마지막에 택시를 탈 때 중국인 가족들은 나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그 말이 진심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중국으로 돌아간 그들의 머릿속에는 한국 여행 중 답답하게 기다리던 그 한 시간이 기억에 가장 오래 남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 관광공사가 택시를 잡아줬으면 어땠을까. 중국인 가족들은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고, 나는 땀을 흘리지 않은 채 좋은 기분으로 잠수교를 건넜을 것이다. 관광공사가 무책임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상황도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대응시스템을 갖췄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엔 외국어 실력이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외국인들에게 그런 ‘불운’을 계속 겪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 모두가 외국어를 배우는 것보다는 관광공사가 그런 시스템을 갖추는 게 좀 더 빠르지 않을까 싶다.

이도형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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