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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의월요일에읽는시] 숨길 수 없는 노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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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09 23:17:23 수정 : 2016-10-09 23: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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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1952∼)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
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 하늘 아득히 황사가 내려 길도
마을도 어두워지면 먼지처럼 두터운 세월을 뚫고 나는 그
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
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

서러움이 아닌 사랑이 어디 있는가 너무 빠르거나 늦은
그대여, 나보다 먼저 그대보다 먼저 우리 사랑은 서러움
이다


이성복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을 깨는가’를 읽은 독자라면 그의 시를 만날 때마다 또 다른 1980년대 충격을 기대하며 시를 접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만남은 첫 시집과 상이한 정서인 사랑의 언어였다. 소월과 만해가 함께 속삭이고 있는 듯한. 그의 시적 전략이었는지 원숙함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시는 시 쓰는 사람에게도 여러모로 예사롭지 않는 사건이다. 시 쓰기에 대해 그가 평소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소개하고 인용시 해설에 대신한다.

김영남 시인
“테니스. 서브를 할 때는 무작정 세게 넣으려고 하기보다, 공손하게 절하듯이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부드러운 글쓰기는 항상 힘을 가지지만, 부드러운 글쓰기를 위해서는 최대한 힘을 빼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힘 있는 사람만이 힘을 뺄 수 있다는 데 있다. 어디에서나 강퍅한 동작은 힘의 부족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글쓰기의 마지막은 ‘따오기’ 노래처럼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마지막에 독자를 빈손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다시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초콜릿을 선물할 때 껍질을 까서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며, 아무도 이미 씹어 놓은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선물은 포장을 벗기기 직전까지이다.”(현대시, 2014년 4월호, 글쓰기의 비유들/ 이성복)

김영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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