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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감동의 ‘어울림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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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09 23:17:41 수정 : 2016-10-09 23: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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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바빠서인지 게을러서인지 살 좀 빼야지 했던 올해 초 다짐은 말만 남았다. 3개월치 헬스클럽을 한 번에 끊었으나 곧 일주일에 한 번 가기도 드문 일이 됐다. 실내 운동은 금방 지루해진다며 동네 공원을 찾아 조깅도 했다. 무리한 조깅은 무릎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말이 떠올라 꽤 비싼 운동화까지 샀다. 그러나 이 또한 금방 시들해졌다. 날씨 탓, 컨디션 탓 등 온갖 이유를 촘촘히 들이대며 소파나 침대에 눕기 일쑤였다. 내 무릎은 온실 속 화초처럼 소중히 모셔졌다.

그러다 위기 아닌 위기가 무릎에 찾아왔다. 가을을 맞아 마라톤을 시작한 것이다.

많게는 5만원까지 참가비를 내야 하니 돈이 아까워서라도 ‘강제 뜀박질’을 하게 해주는 마라톤은 나름 오래 곁에 두고 지낼만 한 취미였다. 더욱이 최근 마라톤 대회는 다른 대회와의 차별화를 위해 깜찍한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경우도 많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최근 참여한 한 마라톤 대회에선 코스 내 한강굴다리에 휘황찬란한 조명을 달고 음악을 틀어 클럽 분위기를 연출했다. 덕분에 다른 참가자 수백명과 함께 굴다리 안에서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면서 달리는 괴상망측한 경험도 했다.

김승환 사회부 기자
요사스런 광경만 있는 건 아니다.

한 달여 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한 대회에선 일부 참가자들이 다른 참가자와 손목에 끈을 묶고 함께 달렸다. ‘제2회 시각장애인돕기 함께 뛰는 어울림 마라톤대회’라는 이름이 붙은 대회였다. 마라톤 초심자인 나는 평소 7∼8㎞는 가볍게 뛰니깐 조금만 더 무리하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10㎞ 코스를 택한 터였다. 대회 주최 측에서 나눠준 기록 측정 칩의 이용법을 몰라 열심히 뛰고도 기록증명서도 발급받지 못한 날이었다.

7㎞ 넘어가는 지점에서, 코스 부근에 구급차가 대기 중인 이유를 온몸으로 느끼기도 했지만 가까스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흉한 몰골로 아무 데나 주저앉아 얼굴을 숙인 채 헉헉댔다. 그때 누군가 내 등을 두드렸다. 벌어진 입도 다물지 못한 채 고개를 돌리니 시각장애인과 끈을 묶고 함께 달린 한 40대 남성이 생수병을 건넸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한 채 일단 물을 들이켰다.

숨을 돌리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저는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참 대단하시네요”라고 말을 건넸다. 그 남성은 옆에 선 시각장애인을 가리키며 “저도 마라톤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힘든데, 이 친구랑 함께 뛰어보려고 한 달 전부터 연습해서 그나마 좀 나아진 편”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몸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힘든 중에도 머리를 땡 하고 치는 느낌이 있었다. 어려운 사람을 돕기는커녕 본인 사정만 따지며 무리하게 한 농민의 시신을 부검하겠다는 검경이나 상대 당과의 협조 따윈 선택지에 없는 듯한 국회를 떠올리면 더욱 그분의 말이 각별했다.

내년 3회 대회는 그분을 떠올리며 나도 시각장애인과 함께 뛸 생각이다. 우수하지 못한 몸뚱이인 탓에 내년까지 마라톤을 취미로 하고 있을지 장담은 못하지만 그분 말대로 몸이 아니라 마음이 더 중요하니 약속 아닌 약속을 남발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김승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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