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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알 수 없는 나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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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12 10:28:30 수정 : 2016-10-12 10: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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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말 한·일 위안부 합의 불구
와사비 테러, 아베 ‘털끝’ 발언 등
상대방 배려 눈곱만큼도 없어
과거사 문제 계속 묻고 따져야
최근 일본 오사카에서 유명 초밥집이 한국인 관광객에게 와사비(고추냉이)를 잔뜩 넣은 음식을 제공해 ‘와사비 테러’ 논란이 일었다. 한 버스회사는 한국인 관광객에게 판매한 버스표 이름난에 ‘김총(キム チョン)’이라고 표기해 물의를 빚었다. ‘총’은 일본에서 한국인을 비하하는 말로 ‘조센진’이라는 뜻이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이용하는 전철 구간에서는 승무원이 “외국인 승객이 많이 타 불편을 드리고 있다”는 안내방송을 해 구설에 올랐다.

일본 정부는 한술 더 뜬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 편지를 보내달라는 한국 측 요구에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고노 요헤이 전 일본 관방장관이 “인간성 문제”라고 질책할 만큼 안하무인의 태도다. 지난해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양국 관계가 개선됐다고 하는데, 곳곳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무례한 처사가 이어진다.

박완규 논설위원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악화된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지난달 한국언론진흥재단·세종연구소 주최 한·일 언론인 포럼 참석차 도쿄를 방문했을 때 만난 게이오대 니시노 준야 교수(정치학)는 “국민 감정 수준이라면 관리할 수 있지만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한국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며 “한·일 관계가 악화된 2012년 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고 새로운 상태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12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요구로 일본 사회가 받은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다. 같은 대학 이광호 교수(언론학)는 “헤이트 스피치(증오 연설) 등 금기가 허물어져 일본 사회의 언설 규범이 오른쪽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아베 정권이 한국을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에서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나라’로 격하시킨 배경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우리와 인식의 차가 크다.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 이번에 만난 일본 고위 관리와 학자, 언론인에게서 이를 새삼 확인했다. 우리에겐 위안부 문제가 현안이지만 그들에겐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이전이 현안이다. 나아가 그들은 과거사 언급을 꺼린다. 과거사 문제를 자꾸 말하면 한·일 관계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국제관계학자는 포럼에서 “쟁점화하면 안 되는 것을 쟁점화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한·일 간 역사 인식 차는 세월이 흘러도 좁혀지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끊임없이 과거사를 왜곡하고 일본 국민 다수는 침묵하고 방관해 왔다. 우리가 한 치도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되는 이유다.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도 좋지만 그 한계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일본이 알 수 없는 나라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한·일 관계의 현주소를 제대로 파악할 수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도 없다.

재일동포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는 에세이집 ‘디아스포라의 눈’에서 “기억하고 증언하는 것은 평화와 인간성을 위한 싸움이다. 어떤 곤란이 있더라도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겨우 100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리고 천황제의 침략 책임은 아직 한 번도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는데 식민지배의 폭력과 굴욕의 기억을 재빨리 와륵(瓦礫·깨진 기와 조각) 속에 묻어버리려는 것인가.”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할 말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이탈리아의 유대인 작가 프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범죄자들을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았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 누구도 용서할 생각이 없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이탈리아와 외국의 파시즘의 범죄였고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뿌리째 뽑아내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만 나는 용서할 수 있다.” 과거사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위안부 합의 이후 우리는 과거사를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바라봐야 한다. 아무리 묻고 따져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다면 계속 묻고 따져야 한다. 그것이 식민지배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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