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공감!문화재] 감은사지, 태극·해룡의 만남

관련이슈 공감 문화재

입력 : 2016-10-13 00:21:17 수정 : 2016-10-13 00:21:1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태극(太極)은 우리 전통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양이다. 유학, 특히 성리학에서는 모든 존재와 가치의 근원을 뜻한다.

태극은 우리 일상생활의 많은 곳에서 다양한 문양으로 채택되었는데, 건축물에 구현된 예도 많다. 가장 찾기 쉬운 곳이 전국 곳곳에 위치한 230여개의 향교 입구에 있는 홍살문이다. 이 홍살문 위를 보면 여러 개의 화살 모양 나무가 서 있는데, 그 한가운데에 태극 문양의 나무판이 있다. 태극은 2태극 또는 3태극으로 되어 있으며 색채는 일정하지 않다. 수원 화성의 문루나 숭례문, 흥인지문의 문루에도 태극은 그려져 있다.

가장 오래된 태극은 2009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복암리 고분에서 발굴한 목간(木簡)에 그려져 있다.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태극은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에 있는 감은사지에서 볼 수 있다. 감은사는 신라 30대 임금인 문무왕이 왜군을 진압하기 위해 짓기 시작한 사찰로 아들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하였다. 문무왕은 중앙 건물인 금당의 기단 아래에 동해바다를 향한 구멍을 두어, 자신의 사후 해룡(海龍)이 되어 머물도록 했다고 한다. 감은사지 앞 동해바다에는 그의 유해를 모신 대왕암이 있다.

사지의 금당 남쪽에서 가로로 긴 석재 서너 개가 발견되었는데 이 석재의 면에는 톱니 같은 이등변삼각형 수십 개와 태극문양(사진)이 새겨져 있다. 사찰에 유학의 원리를 뜻하는 태극이 새겨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고구려에서 불교가 공인된 372년 이전에 유학은 한반도에 전해졌고, 태극은 그때부터 많은 곳에 문양처럼 쓰이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1300년 전 신라의 왕이 야심차게 건설했던 감은사는 탑과 터만 남은 폐허가 되었다. 하지만 남은 유적만으로도 역사적 상상과 감흥에 빠져들기에 충분하다. 한여름 풀숲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는 태극 문양과 해룡의 출입구는 지금 같은 가을엔 완연한 모습을 드러낸다.

조상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