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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의경제수첩] 대한민국 리더십의 이중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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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15 00:58:50 수정 : 2016-10-15 00:5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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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금수저’ 특혜채용 의혹
청년 일자리 공정한 기회 뺏어
국민들 위선의 지도층에 분노
사회정의 어디서 헤매고 있나
단지 우연일까. 금융감독원은 2014년 5월 경력·전문인력 채용 공고에서 법률전문가에 대해서만 경력조건을 없앴다. 정보기술(IT)전문가, 금융회계전문가, 국제전문가 등 다른 분야 전문가 채용에 예외없이 3년 이상 경력조건을 붙인 것과 대조적이다. 도대체 왜, 법률 분야만 경력조건을 없앤 것일까.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4년 4월 변호사 자격취득자 포함’이라는 이례적 단서까지 붙였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지 한달밖에 되지 않은 30대 초반의 L씨가 금감원에 입사할 수 있었던 이유다.

여기까지만 해도 ‘맞춤형 전형’의 의심이 가능하다. 게다가 알고 보니 L씨 부친은 여권 고위인사다. 2012년 10월 선진통일당을 탈당해 박근혜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새누리당에 입당했던 전직 국회의원이다. 채용 당시의 최수현 금감원장과는 행정고시 25회 동기로, 절친이다. 18대 국회에서는 금감원을 감사하는 국회 정무위원이기도 했다. L씨 채용 미스터리를 구성하는 팩트 하나하나는 잘 짜인 퍼즐 조각과 같다. 이 모든 게 우연일까. 


류순열 선임기자
세계일보가 ‘금수저 특혜채용’ 의혹을 단독 보도한 13일 아침 금감원은 해명자료를 통해 “법률 우수인재 영입 차원에서 경력요건을 두지 않았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해명대로라면 실무수습조차 마치지 않은 L씨가 법률 우수인재라는 얘기가 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L씨는 명문대 법대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 로스쿨을 나온 엘리트다. L씨가 출중한 실력으로 1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을 가능성이 제로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의혹이 해소되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런 개개인의 특수성에 있지 않다. 의혹의 핵심은 그의 실력이 검증되기 전에 만들어진 채용기준이다. 기준이 왜 그렇게 바뀐 것인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면 의혹은 그대로 남는다. 그런데 당장 “우수인재 영입 차원에서 경력요건을 두지 않았다”는 해명부터 설득력이 없다.

우연일 수 없는 우연은 많다. 예나 지금이나 맨 앞줄에서 대한민국을 이끄는 ‘파워엘리트’ 그룹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2004년 정치부 기자 시절 파워엘리트 병역 이행 실태를 대대적으로 취재해 보도한 적이 있다. 대통령부터 장·차관, 국회의원, 법원·검찰 수뇌에 이르기까지 입법·사법·행정 3부 고위직 443명과 그들의 2세를 망라했다. 왜 그렇게 있는 집 자식들은 몸이 부실한 건지, 질병으로 군면제를 받은 사례들이 쏟아져나왔다. 수핵탈출증(속칭 디스크), 급성간염, 기관지천식, 체중과다…. 면제사유는 대충 이랬다. 입만 열면 안보타령이던 ‘원조보수’ K의원은 아들이 셋인데 두 명이 급성간염으로 군 면제를 받았다.

‘장삼이사의 아들들’은 안다.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병역을 면제받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들의 눈에 ‘있는 집’ 2세들의 질병과 군면제가 우연으로 비칠 것인가. 당시 같은 질병을 앓고도 군에 다녀온 이들의 성토가 뜨거웠다. ‘금감원 금수저 특혜채용’ 의혹도 마찬가지다. “채용비리는 살인죄”, “가장 공정해야 할 공공기관에서부터 저러면 흙수저들은 죽으라는 얘기”….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은 자판을 두드려 분노를 쏟아냈다.

지도층 위선에 대한 분노, 공정한 기회를 빼앗긴 좌절감은 10년 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그냥 (채용)해.” 경제부총리를 지낸 여권 실세(최경환 새누리당 의원)가 자기 지역구사무소 인턴 출신을 ‘신의 직장’(중소기업진흥공단)에 밀어넣으려고 “(채용이)어렵다”는 공단 이사장을 윽박지르는 현실이다. 그 인턴 출신은 공채 지원자 4500명 중 2299등으로, ‘잠재적 저성과자’다. 앞에선 성과주의를 밀어붙이면서 뒤에서는 이런 일들을 벌이고 있다.

대한민국 리더십은 지금 ‘이중잣대’에 오염돼 추동력을 잃고 있다. 사회정의도 길을 잃은 지 오래다. 마이클 샌델은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공직과 영광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정의란 무엇인가)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정의는 지금 어디에서 헤매고 있나.

류순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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