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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청렴의 길, 부패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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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18 01:02:12 수정 : 2016-10-18 01: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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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과 쇠망을 가른 청렴과 부패
가당찮은 예규로
청탁금지법 엉망으로 만들면서
나라 운명 열겠다고 하는 건가
방촌 황희는 조선 청백리 1호로 꼽힌다. 많은 이야기가 전한다. 한 벌뿐인 조복. 세종이 갑자기 부르니 그는 속꺼풀 옷만 입고 달려갔다. 속옷이 없던 부인. 며느리 옷을 빌려 입었다. 방바닥은 멍석자리였다고 한다. ‘국조인물고’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신분이 수상인데도 살림은 서생 집처럼 쓸쓸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늦복숭아가 잘 익어 이웃집 아이들이 다투어 땄다. 공은 방 안에서 말했다. ‘다 따지 말거라. 나도 맛보고 싶다.’” ‘용재총화’에 나온다.

그를 탐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두루 따져 봤다면 하기 힘든 말이다. 교하 현감에게 전답 매입을 물은 영의정 황희. 사간원은 계를 올렸다. “백관의 우두머리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간관의 기개는 대단했다. 늙은 황희. 땅 한 뙈기 없으니 물러나 기거할 곳을 찾은 것은 아닐까.


강호원 논설위원
벼슬 생활 74년, 삼정승 24년. 조선개국 세력은 그를 탐탁히 여기지 않았다. 음해는 없었을까. 부패한 관료였다면 저택에 살았을 것이 아닌가. 그의 집은 작았다. 방에서 아이들 소리를 듣고, 남겨두라는 말을 건넸으니. 열 차례나 물러난 황희. 그때마다 세종은 가만두질 않았다. 숨진 뒤 문종이 남긴 교서, “어찌 갑자기 세종을 따라가 거울을 잃어버린(亡鑒) 탄식을 하게 하는가.” 위징을 잃은 당 태종의 심정이었을까.

조선 초 꿈틀거린 청렴한 기풍. 황희만 그랬을까. 당대 이름난 맹사성, 유관, 이징옥이 모두 그랬다. 이징옥만 청백리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란에 반기를 들었으니. 세종 때의 성세(盛世).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고관이 청렴하니 정책이 바르고, 그러니 모두가 따른다. 연분구등·전분육등을 내용으로 한 세종의 토지·전세 개혁은 대성공한다. 토지를 감춘 지주와 향리, 호구를 감춘 백성. 더 이상 감추지 않았다. 왜? 청렴한 정치를 믿었으니. 성세는 그로부터 비롯된다.

조선 후기. 왜 쇠망의 길을 걸었을까. 부패가 똬리를 틀고 있다. 삼정(三政)의 문란. 전정, 군정, 환정은 엉망으로 변했다. 힘 있는 자가 빼앗으려 대드니 백성은 견디기 힘들다. 끝내 유랑길에 오르고 등을 돌린다. 모순을 해결하자면 수술을 해야 한다. 하지만 개혁은 없었다. 왜? 부패를 당연시하니 고칠 수 없다. 농민 봉기. 변증법으로 풀자면 부패에 대한 반정립이다. 부패는 나라를 잡아먹었다.

청탁금지법은 역사적인 법률이다. 1993년 금융실명제 이후 23년 만에 나온 청렴 기풍을 진작시킬 개혁이다. 역병처럼 번진 부패. 선비정신을 기대하기 힘드니 강제로라도 청렴 기풍을 되살리려는 법률이다.

곳곳이 난리다. “선생님에게 캔커피를 드려도 되나요?” “스승의 날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면?” “운동회 날 김밥 싸드리면?” 국민권익위 위원장은 말했다. “위반이다.” 청탁금지법은 괴물로 변하고 있다.

누가 괴물로 만들고 있는가. 법률인가, 정부인가. 제8조 제2항, “공직자 등은 직무와 관련하여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 제1항에서 정한 금액 이하의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 조문이 문제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문을 애써 확대해 해석하니 법은 공동체를 잡아먹는 괴물로 변하고 만다. 캔커피, 카네이션, 김밥이 왜 뇌물인가.

얼토당토않은 예규를 풀빵 찍듯 만드는 곳은 국민권익위다. 애초 개혁적이지 않았다. 2013년 8월, 법무부와 함께 알맹이 빠진 청탁금지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100만원 이상 받은 공직자를 형사 처벌한다는 조항을 쏙 뺐다. 이 조항은 여론에 떠밀려 되살아났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예규를 쏟아내는가. “법률이 그렇게 정했으니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고 하는가. 그렇다면 “직무 관련성 있는 경조사는 안 된다”던 예규는 왜 “된다”고 바꾸었나.

개혁을 하자는 것인가, 말자는 것인가. 시시콜콜 부작용을 늘리는 쪽으로 애써 예규를 만들면 ‘공동체 의식을 파괴하는 죽은 법’으로 변할 테니 그것이야말로 반개혁적인 행태 아닐까.

길은 두 갈래다. 청렴의 길과 부패의 길. 어느 길을 걷느냐에 따라 흥망은 갈렸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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