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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국익을 포기할 수 있을까

입력 : 2016-10-20 13:20:41 수정 : 2016-10-20 13: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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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 침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vs "저야말로 표현의 자유가 있습니다."

지난 11일 국정감사장에서 고대영 KBS 사장과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벌인 설전입니다. 사달은 유승희 의원이 김인영 KBS 보도본부장에게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세월호 참사 관련 KBS 보도 개입 의혹’에 대한 지난 7월 리포트가 방송되지 않은 이유를 질의하면서 났습니다.


고대영 사장은 "국회의원이 기사가 나갔느냐, 안 나갔느냐를 보도 책임자에게 묻는 것은 언론 자유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자 유 의원은 "지금 나를 훈계하는 거냐, 저야말로 표현의 자유가 있고, 지금 저는 보도본부장에게 물었다"고 재차 캐묻자 고 사장이 "답변하지 마"라고 신경질적으로 말해 국감이 한때 정회되기도 했습니다.

누구 말이 더 옳은지는 듣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다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언급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다르고, 어떠한 근거와 맥락에서 이같은 표현을 썼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제21조 제1항)고 이들을 국민의 기본 권리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언론·출판의 자유’는 ‘집회·결사의 자유’와 함께 ‘표현의 자유’의 하위 개념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구두에 의한 발언의 자유와 인쇄에 의한 출판의 자유를 포함하여 온갖 표현매체에 의한 ‘표현의 자유’를 의미하는 포괄적 개념"이라고 정의합니다.

고 사장이 언급한 ‘언론 자유’는 헌법 제21조 제2항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에 근거한 것 같습니다. 공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정부는 물론이고 (일종의 권력자인) 국회의원으로부터도 간섭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논리일 것입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유 의원은 "저야말로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응수했죠.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으로서, 그리고 공영방송의 불법·합법성, 효율·타당성을 따지는 국감장에서 언론의 공정성, 독립성을 해치는 외압 여부에 대해 따지는 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이자 국회의원으로서 마땅한 의무라는 주장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 제21조 제1항에 명시된 국민 기본권이다.

흔히 ‘표현의 자유’는 민주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필수 존건이라고 평가됩니다. 원로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저서 ‘헌법이론과 헌법’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여론에 의한 참여 통로를 열어 놓고,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국민투표를 제도화하며, 의사 표현과 정보의 전파를 통한 정치적 합의 형성을 돕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전제조건이 아닐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가 말한 것으로 알려진 이 말은 권력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보장하고 소수 의견도 존중, 수렴함으로써 사회 통합과 발전을 꾀한다는 자유민주주의의 바람직한 작동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금언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해 논란을 일으킨 일간베스트저장소(왼쪽)와 '한남충' 등 미러링으로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극단적 페미니즘 사이트 메갈리아.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무한정 보장돼야 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최근 일베(일간베스트)나 메갈(메갈리아)의 혐오발언을 규제할지에 관한 사회적 논란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헌법은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중도덕, 사회윤리는 상당히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이기도 합니다. 각자의 도덕기준이나 이념성향에 따라 그 개념이나 범주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익과 직결된 안보·경제 이슈는 어떨까요? 한국 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국익을 희생시킬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가 최근 보도한 ‘ 범법 행위를 용인하는 나라 순위에 관한 지도’ 입니다. 미국 여론조사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의 ‘ 표현의자유지수’(FEI) 순위를 그래픽화한 것입니다. 

한국의 FEI는 3.83점(8점 만점)으로 순위는 조사 대상 37개국 가운데 21위였습니다. 1∼3위는 미국(5.73), 폴란드(5.66), 스페인(5.62)였고 프랑스(4.72, 11위), 러시아(3.34, 28위), 일본(3.27, 30위)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세네갈(2.06)과 요르단(2.53), 파키스탄(2.78)이 하위 1∼3위를 차지했네요.


FEI는 ▲정부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소수자에 대한 공격적 발언을 용인해야 한다 ▲타인의 종교·신념에 대한 공격적인 공개발언도 용인돼야 한다 ▲성적으로 노골적인 발언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폭력적 시위를 공개적으로 촉구해도 괜찮다 ▲언론이 대규모 정치적 시위를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 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 경제이슈도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 안보와 관련된 민감한 이슈도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 등 8가지 질문에 대한 동의 정도를 따져 점수를 매깁니다.
한국의 경우 ‘정부 정책 비판’과 ‘정치시위 보도’ ‘성적인 발언’에 대한 용인율이 평균보다 크게 낮았습니다. 한국인의 70%는 "정부 정책을 공개 비판할 수 있다"고 응답했는데, 37개국 평균은 80%였습니다. 또 ‘정치시위 보도’는 68%(평균 78%), ‘성적 발언’은 17%(평균 26%)였습니다. 안보나 경제 이슈 같은 국익과 관련된 보도에 대한 용인율은 각각 37%, 58%로 조사국 평균보다 각각 3%포인트, 1%포인트 낮았습니다. ‘소수자’나 ‘종교·신념’에 대한 용인율은 각각 42%, 51%로 평균(36%, 35%)보다 높았습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한국은 국가 안보와 정부 정책에 관한 이슈의 경우 세대별, 학력별로 의견이 크게 갈렸습니다. 조사대상국 중 가장 컸습니다. ‘국익에 반하는 언론보도도 용인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의 18∼29세 응답자는 52% 동의율을 보였지만 50세 이상은 19%에 그쳤습니다. 


또 ‘정부 정책에 대한 공개 비판’에 대해서는 한국 고학력자의 79%가 동의했지만 저학력자의 동의율은 59%에 불과했습니다. ‘언론자유에 대한 지지’ 항목에서도 한국의 고학력자는 60%가 동의했지만 저학력자는 41%에 그쳐 그 차이가 조사국 중 세 번째로 컸습니다. 소득규모에 따라서도 ‘언론의 자유’에 대한 입장은 달랐습니다. 고소득자 동의율은 59%였지만 저소득자는 44%였습니다. 15%포인트 차이는 조사국 중 두 번째로 벌어진 겁니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한겨레 기고문에서 ‘표현의 자유’를 내용상의 가치 판단과 형식상의 자유 보장을 최대한 분리해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조 교수는 표현의 자유가 "외견상 보편적 권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특정한 맥락과 배경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이념적 가치판단을 적용하기에 적합한 개념이 아니다"고 강조합니다. 표현의 자유가 갖고 있는 논리상의 내재적 모순과 이중적, 위선적 측면, 이념별, 세대별, 학력별, 소득분위별로 상이한 ‘표현의 자유’ 범주 때문에 늘 갈등과 대립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슬람교 예언자 무함마드에 대한 비판적 만평으로 이슬람국가(IS)로부터 테러를 당한 프랑스 풍자주간 샤를리 에브도는 시리아 난민 소년의 익사 직후 유럽으로의 대규모 난민 유입 사태를 풍자하는 만평을 게재했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렇다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 관한 합의점을 어떻게 찾아 사회 통합,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까요? 조 교수의 해법은 ‘시민의 공적 이성으로 통제를 하자’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체제에서 100% 보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그것의 실천은 시민들의 건전한 양식으로 조절되는 것이 좋다. 그래도 논란이 되는 10%는 여론과 논쟁의 용광로에서 치열하게 부딪쳐야 한다. 그래도 안되면 그중 1% 정도가 법정으로까지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0.1% 미만이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 순서가 바뀌면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모두 위협받는다."
표현의 자유는 과연 국익과 직결된 이슈에서도 존중받을 수 있을까. 사진은 MBC 'PD수첩'의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의혹 보도 당시 항의 시위 모습.

다시 11일 국감장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국회의원, 피감기관증인의 관계를 떠나 고대영 KBS 사장은 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따지는 질의에 굳이 '언론 자유'를 언급해야만 했을까요? 과연 청와대 홍보수석의 민원 전화는 '의견제시'일 뿐이고 국감장에서의 야당 의원 질의는 '부당한 권력의 간섭'일까요? 무엇보다 치열한 논쟁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민주주의의 자양분이 된다는 '표현(언론)의 자유'를 감안할 때 공영방송 수장의 "답변하지 마" 발언은 혹여 '지적 비겁함이자 정치적 교활함'의 발로이진 않을까요?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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