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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물속 뛰어들고 총격범 덮친 한국의 '착한 사마리아인'

입력 : 2016-10-21 07:39:43 수정 : 2016-10-21 10: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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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사람 구하는 데 목숨 건 의인들 줄줄이 등장
한 해 평균 의사자 17명…"거룩한 희생 잊지 말아야"
지난 9월 서울에서 60대 택시기사가 운전 중 실신하자 뒷좌석 승객은 그냥 사라졌다. 뒤늦게 경찰이 출동했지만, 기사는 숨진 뒤였다.

8월에는 대전에서 택시기사가 앞차와 추돌해 중태에 빠졌는데도 승객이 아무런 구호 없이 자리를 떴다. 이 기사도 병원에 이송됐지만,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누리꾼은 냉혈한 등으로 부르며 이기적인 세태를 개탄했다. 극단적 물질주의와 도덕성 상실을 자성하기도 했다.

급기야 생명이 위험한 사람을 보고도 구조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법안'이다.

공동체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훈훈한 소식도 최근 잇따랐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구하려고 불길과 물속으로 뛰어든 의인들이 나타났다. 사제 총으로 경찰관을 쏴 죽인 범인을 검거하려고 온몸을 날린 시민도 있었다. 이들은 각박한 세상을 밝히는 이 시대의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자체들은 조례 등을 만들어 다양한 의인들을 지원하고 있으나 거룩한 희생정신을 보상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故 안치범·정연승·이수현씨(왼쪽부터)
◇ 총격·불길 위험 무릅쓴 '보통사람들'의 살신성인

지난 19일 서울에서 발생한 경찰관 총격 살해사건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하는 데 시민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용직 노동자 김광윤(56)씨는 김창호(54) 경위를 사제총으로 쏴 죽인 성병대(45)에게 달려들어 목을 제압했다.

19일 서울 경찰관 총격 살해사건 현장서 총격범 붙잡은 상인들 가게
사건 현장 부근에서 술을 마시던 그는 총성을 듣고 밖으로 나갔다가 범인을 발견하자 주저 없이 덮쳤다.

일행인 이동영(33)씨는 인공호흡으로 쓰러진 경찰관을 살리려고 애썼고, 인근 상인들도 범인 검거에 힘을 보탰다.

성우를 꿈꾸던 청년 안치범(28)씨는 지난달 9일 새벽 서울 마포구 서교동 5층 빌라에 불이 나자 불길 속으로 들어가 집집을 다니며 잠든 이웃을 깨운 뒤 질식해 숨졌다.

지난 13일 울산시 울주군 경부고속도로에서는 관광버스 화재로 다친 승객 4명을 승용차에 태워 병원으로 옮긴 남성이 있었다.

고교 교사로 갓 부임한 소현섭(30)씨는 응급실에 도착한 뒤 휠체어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고서 홀연히 자리를 떴다. 남몰래 선행한 것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양천구 한 다가구주택에 불이 나자 입주민 박대호(32)씨는 집집이 초인종을 누르고 맨손으로 방범창을 뜯어 지하에 사는 10대 남매를 구했다.

경기 광주에 사는 김민수(26)씨와 홍형표(56)씨는 지난해 6월 9일 아파트 6층에서 떨어지는 A(36·여)씨와 딸(8)을 두 팔로 받다가 각각 어깨골절상과 뇌출혈·발목골절상을 입었다.

지난 2월 24일에는 강원 삼척시 근덕면 용화리 앞 도로에서 사고 차량을 목격한 이상재(36)씨가 후속 사고를 막으려고 차에서 내려 수신호를 하다가 트레일러에 치여 숨졌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의사자 수는 86명이다. 연평균 17.2명이 의협심에 목숨을 던졌다. 이들은 모두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고 많은 돈도 갖지 못한 보통사람들이다.

교통사고 피해자 구조 도중 숨진 故 정연승 상사 추모비 제막.
◇ 의인 추모 표지석·기념비·훈장 잇따라

서울시의회 김용석 의원은 최근 의사자를 추모하는 조형물 설치 근거를 담은 '서울특별시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

조례안은 서울시장이 의사자 유가족과 협의해 적절한 장소에 작은 동판이나 기념비 등 조형물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충북 충주시는 관련 조례에 따라 의사상자를 기리는 추모 표지석을 설치한다.

서울 마포구는 최근 '초인종 의인' 고 안치범씨에게 '용감한 구민상'을 추서해 거룩한 희생을 기렸다.

일본 정부는 2001년 일본 도쿄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고 숨진 고 이수현(당시 26세)씨 공로를 기려 최근에 유족에게 '욱일쌍광장'(훈장)을 전하기도 했다.

의사자로 지정하면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유족에게 보상금 약 2억원(2016년 기준)을 지급한다. 장례 비용은 별도로 제공한다.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 등은 의료급여 대상자가 돼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고 병원 치료비 일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유족이 신청하면 의사자는 심의 결과에 따라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다.

의상자(義傷者)는 다친 정도에 따라 보상금 등을 차등 지급한다.

`세월호 의인` 故 남윤철 교사 묘지.
◇ 지자체 지원은 제각각

충남도는 2009년 '의로운 도민 등에 대한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국가나 공공기관에서 받은 보상금 외에 사망자는 2천만원 이내, 부상자와 피해자는 1천500만원 이내에서 위로금을 지급한다.

광주광역시도 조례에 따라 의사자 유족에게 위로금 2천만원, 의상자에게 1천만∼1천500만원을 준다.

경북도는 2010년 4월 관련 조례를 만들어 의사자 유족에게 특별위로금(1천500만원)을 주고, 유족 1인에게 매달 수당 5만원을 지원한다.

대구시는 2009년 의로운 시민 등에 관한 예우 및 지원 조례를 만들었지만, 의상자나 의사자 유족이 체육시설 등을 이용할 때 요금을 감면해 주는 수준에 그쳤다.

대구시 관계자는 "법률에 따른 정부 차원 보상 말고 지자체도 의인과 유족 돕기에 나서지만, 예산 등 여건이 여의치 않아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인천은 해당 조례조차 없다.

우리복지시민연합 은재식 사무처장은 "각박해진 사회에서 지역사회가 경제적, 육체적 피해를 무릅쓰고 의로운 행동을 한 분들의 희생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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