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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박물관은 운동장이 아니다

입력 : 2016-10-21 23:32:17 수정 : 2016-10-21 23: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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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들고 뛰어다니는 학생들
공짜라고 유물 경시하는 걸까
문화강국의 자부심 가지려면
우리 스스로 아끼고 보존해야
10월 들어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두 번 갔다. 한 번은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이라는 특별전을 보기 위해서였고, 다른 한 번은 그 특별전 전시 도록(圖錄)을 살 겸 간만에 상설전을 관람하려는 계획이었다. 당겨 말하자면, 조선 말 도시 형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특별전 전시는 볼 만했고, 세심하게 잘 만든 도록 역시 손에 넣었다. 하지만 상설전 관람은 포기해야 했다. 이미 지난 수년 동안 몇 번에 걸쳐 상설전을 본 터라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덕분에 이 박물관 상설전은 언제 다시 보아도 새로웠다. 어느 날인가는 이전에는 눈에 안 들어왔던 유물이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경험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상설전시 관람을 포기했다. 어린 학생들로 미어터졌기 때문이다.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은 프랑스의 루브르나 영국의 브리티시 뮤지엄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특별한 장소다. 물론 세계 어디든 관람객은 북적인다. 루브르를 여러 번 갔지만, 제대로 다 둘러본 적이 없다. 특히 모나리자 전시실이나 밀로의 비너스 전시실 같은 곳은 사람에 떠밀려 제대로 작품을 보고 감상할 틈도 없다. 그런 점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가장 한적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상설전 관람 계획을 접어야만 했다. 중앙계단에 앉아 떠드는 학생들의 소리부터가 머릿속을 뒤흔들 정도였다. 프리미어 리그의 축구 경기장 수준이다. 어린 학생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애들은 다 그렇다. 그러면 소리가 울릴 수밖에 없는 건축구조 탓일까. 문제는 그 학생들이 박물관 안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관람 문화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다.


박철화 문학평론가
그 생각을 하다가 자주 다니는 북한산의 한 풍경이 떠올랐다. 북한산은 명산이다. 인구 1000만명의 수도가 이처럼 멋진 산을 끼고 있는 예를 찾아볼 수가 없다. 바위와 계곡 그 자체로 국보 이상의 가치를 가진 이 산은 서울의 허파와 같은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래서 꽤 정성들여 관리를 함에도 곳곳이 오물 천지다. 주말에 사람이 몰리는 거야 국민의 건강관리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등산객이 가져온 음식물까지 뒤섞인 쓰레기가 숲 아래 나무 밑 같은 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혹시 이런 사태가 비용을 들이지 않는 공짜라는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박물관의 특설전은 입장료가 있지만, 상설전은 늘 무료다. 국립공원 입장료도 2007년에 폐지됐다. 그 결과 더 많은 국민이 편하게 이용하게 됐지만, 공짜만큼 쉽게 여겨 함부로 대하는 부작용도 나타난 게 아닐까. 인터넷 정보혁명이 정보의 무료를 가져온 뒤에 우리는 많은 것을 비용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것이 꼭 바람직한 일인지는 확신이 서질 않는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와서 떠들고 뛰어다니며 장난치는 학생들에서 보듯 입장료가 없으니 무의식중에 그만큼 문화유물을 가볍게 여긴 게 아닌가. 북한산도 담배 피우는 동네골목처럼 함부로 생각하는 건 아닌가.

브리티시 뮤지엄의 경우 입장료가 없다. 하지만 서양에는 부유층의 문화 후원제도가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나도 입장료만큼의 후원금을 모금함에 넣었다. 그것은 영국을 넘어 세계인의 유물이기 때문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입장료는 상당히 비싸다. 하지만 누구도 거기에 불만을 터트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조심하며 정성스럽게 유물을 돌아보려 애쓴다. 그것이 문화 강국의 자부심이다. 그런데 외국인들도 적지 않게 오는 특별한 장소에서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의 귀한 문화유물과 자원을 공짜처럼 가볍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이 무료입장 제도가 바람직한 것일까. 귀한 것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서 그것을 더욱 아끼고 보존하는 데 써야 하지 않을까?

박철화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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