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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색] 검은돈 중간서 꿀꺽… '슈킹' 나선 청년들

입력 : 2016-10-21 19:13:17 수정 : 2016-10-21 21: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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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사정 궁핍한 10·20대 타깃/고수익 알바로 유혹 인출책 모집/대가 못받으면 돈 가로채기 일쑤/청소년도 동참했다 검거 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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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받은 대가를 안 줘서….”

지난달 서울에 사는 취업준비생 이모(28)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뒤통수’를 치기로 마음먹었다. “계좌로 들어온 돈을 인출해주면 5%의 수수료를 주겠다”는 말에 지인 통장에 들어온 1000만원을 받아 넘겼지만 수수료 50만원은 감감무소식이었기 때문이다. ‘당했다’는 생각이 든 이씨는 거꾸로 “새로 돈을 인출할 사람을 모집했다”며 조직에 접근했다. 동네 후배인 유모(22)씨 통장으로 검은돈이 입금되면 중간에서 가로챌 속셈이었다.

하지만 이씨 계획은 행색이 남루한 유씨가 “명품 시계를 판 돈을 찾는다”며 1200만원을 인출하려는 것을 의심한 은행원의 신고로 물거품이 됐다. 중랑경찰서 관계자는 “전형적인 배달사고”라며 “생활고에 시달린 20대 사회 초년생들이 이 같은 범죄에 빠지기 쉽다”고 설명했다.

최근 신고가 어려운 범죄수익이란 점을 노려 범죄조직의 돈을 가로채는 ‘슈킹’에 나선 청년이 늘고 있다. 지난해 피해액이 1000억원을 넘어설 정도로 보이스피싱이 만연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수금을 뜻하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 ‘슈킹’은 범죄수익을 빼돌리는 수법을 이르는 은어다.


21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011년 이후 처음으로 1000억원을 넘어섰다. 2011년 1019억원(8244건)으로 당시 역대 최고를 기록한 피해액은 2012년(595억원/5709건)과 2013년(552억원/4765건) 잠시 주춤하다가 지난해 1070억원(7239건)으로 반등했다.

보이스피싱 근절이 어려운 것은 조직 대부분 해외에 본거지를 두고 있어서다. 경찰은 이들 조직의 80∼90%가 중국 연변과 헤이룽장성, 지린성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보이스피싱 범죄는 현지 인출책 등 ‘꼬리’만 잡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국내 중국인 커뮤니티에서 ‘인출=범죄’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인출책 맡기를 꺼리자 경제사정이 궁핍하고 판단력이 떨어지는 10·20대와 노인들이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중국 범죄조직들은 대개 ‘위챗’ 등 랜덤채팅 앱이나 지하철 전단지로 ‘나이성별 불문’ ‘고수익 알바’라며 인출책을 모집하는데, 최근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성의 사진을 걸어두고 불특정 젊은 남성에게 접근하는 수법을 쓴다.

경찰 관계자는 “‘세금 절감을 위해서’라거나 ‘계좌가 막혀서’라는 핑계를 대며 인출 대가로 50만∼100만원을 주겠다는 식”이라며 “하지만 대면접촉 없이 전화나 채팅으로만 연락해서 인출책들이 슈킹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아예 처음부터 슈킹을 하려고 대포통장을 넘기는 인출책도 적지 않다. 최근 서울북부지검이 구속기소한 김모(29)씨는 범죄조직에 본인 명의 통장을 300만원에 넘긴 뒤 미리 설정해 놓은 입금 알림 메시지가 뜨자마자 온라인 뱅킹으로 5000만원을 꿀꺽했다.

심지어 청소년까지 슈킹에 나서다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 3월 인천에서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의 돈을 빼돌린 고교생 7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대포통장을 넘긴 뒤 몰래 만든 현금카드로 1500만원을 인출해 유흥비로 탕진한 학생들은 “돈을 빼돌려도 중국 조직에서 잡지 못한다”며 중고교 동창들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슈킹도 피해자가 특정되면 사기죄 등으로 엄벌을 받을 수 있다. 최근 검찰은 보이스피싱 단순 가담자도 징역 5년형 이상을 구형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임몽수 팀장은 “안이한 생각으로 돈을 가로채려다가 범죄조직이 저지른 혐의까지 몽땅 뒤집어쓸 수 있다”며 “고수익 아르바이트는 사전에 위법 여부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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