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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언감생심 유물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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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24 00:20:42 수정 : 2016-10-24 00: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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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불화 ‘수월관음도’를 사이에 두고 한국콜마홀딩스 윤동한 회장과 국립중앙박물관 이영훈 관장은 나란히 서서 웃고 있었다. 불화를 기증한 윤 회장은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에 쑥스러워했고, 기증받은 이 관장은 중앙박물관이 드디어 고려불화를 소장하게 된 것에 뿌듯해했다. 지난 17일 열린 기증식, 멋진 장면이었다. 세계를 통틀어 160점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희귀하고, 가장 뛰어난 예술적 성취라는 고려불화라서가 아니라, 무엇이 되었든 기증은 유물을 매개로 한 가장 돋보이는 행위가 아닐까.

서둘러 기사를 마무리하고 박물관을 나서며 기증식을 취재하며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을 되새겨봤다. 윤 회장은 지난 4월쯤 지인을 통해 한국에 수월관음도를 넘기고 싶어하는 일본인 소장자와 접촉했고,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쳐 25억원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구열 문화부 기자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소장자가 윤 회장이 아니라 애초 문화재청이나 국립박물관에 구매 의사를 물었다면 어땠을까. “개인이 사면 사장(私藏)될 수도 있다. 국립박물관(혹은 문화재청)이 사서 한국 국민들이 널리 공유하면 나로서도 기쁘겠다”라고 말이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고가 유물의 일반적인 유통방식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는지라 이런 상상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자신은 없다. 다만 국립박물관, 문화재청의 열악한 유물 구입 예산에 대해 들은 바가 있어 떠올린 생각이다.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한다’가 나름의 결론이다.

국립박물관의 한 해 유물구입비 예산은 39억원이다. 서울의 중앙박물관과 지방의 13개 국립박물관이 이 돈으로 연구나 전시에 필요한 유물을 구입한다. 25억원의 수월관음도를 샀다면 예산의 절반 이상을 유물 한 점 구입하는 데 쓰게 된다. 고려불화가 아무리 귀하다 한들 유물 한 점에 예산을 쏟아부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문화재청은 쓸 수 있는 돈이 27억원가량 된다. 20억원은 긴급매입비이고, 7억원은 산하의 국립고궁박물관에 배정된 것이다. 그런데 긴급매입비는 유물 구입뿐 아니라 천재지변 등으로 갑작스럽게 유물 훼손이 발생했을 때 보존, 복원 등의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수월관음도에 ‘올인’하고 나면 너무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

유물 구입은 국민들의 문화재 향유를 풍요롭게 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국가에서 좋은 문화재를 구입해 국민유산으로 하고 향유하게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외에 흩어진 우리 유물을 환수하는 데 주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한 전문가는 “지금의 예산으로는 환수해야 할 유물이 경매에 나와도 대응하는 데 한계가 많다. 억원 단위로 경매가가 넘어가면 따라가기가 벅차다”고 지적했다.

한국 유물이 국제 경매 시장에서 수십억원에 거래가 되었다는 사실이 뉴스가 되곤 한다. 최상급의 고려불화, 청화백자 등 일부 유물은 50억원 대에 거래되기도 한다.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졌다는 증거이니 반가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국가기관은 그런 유물 단 한 점을 확보하기가 언감생심인 게 현실이다. 초라하지 않은가.

강구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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