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남편인 빌 클린턴의 대선 승리로 퍼스트레이디가 된 힐러리는 보수 진영의 표적이 됐다. 그럴 만도 했다. 힐러리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 웨스트윙에 퍼스트 레이디 사무실을 마련했다. 그때까지 퍼스트 레이디의 사무실은 백악관 이스트윙에 있었다. 남편을 내조하던 기존의 퍼스트레이디와 달리 힐러리는 빌 클린턴 정부의 의료개혁을 진두지휘하는 등 빌과 사실상 ‘공동 통치’를 했다. 여성과 동성애자 권익 보호에도 앞장섰다. 전통을 중시하는 공화당 의원들의 눈에 힐러리가 곱게 보였을 리 없다.
조남규 국제부장 |
힐러리가 2000년 상원의원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한 이래 그의 정치는 측근들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런 측근 정치는 힐러리가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패배한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의리로 뭉쳐 있던 힐러리 캠프는 능력있는 인재와 참신한 전략을 쉽게 수용하지 못했다. 인재와 전략은 오바마 캠프로 흘러 들어갔다. 힐러리는 이후 외부 인사에도 힐러리랜드의 문호를 일부 개방했다.
힐러리의 최측근인 셰릴 밀스와 힐러리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후마 에버딘은 클린턴 정부 시절부터 힐러리랜드에 소속돼 있던 인사들이다. 밀스와 에버딘은 힐러리가 국무장관에 임명됐을 때 각각 비서실장과 비서실차장에 임명됐다. 힐러리와 에버딘의 관계를 놓고는 “빌조차도 힐러리와 접촉하려면 에버딘을 통해야 한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힐러리의 비밀주의 행태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힐러리는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을 통해 측근들과만 은밀히 소통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기밀로 분류된 정보들이 사적으로 유통됐다. 미국 사법당국이 힐러리를 기소했다면 올해 대선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2016년 대선 과정에서 힐러리를 괴롭혔던 ‘이메일 스캔들’은 비밀주의 행태가 낳은 예고된 참사였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는 대선 캠페인 기간에 힐러리의 측근 정치와 비밀주의 행태를 공격했다. 힐러리의 측근 중에는 컨설팅 회사를 차려놓고 세계 각국의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떼돈을 번 인사도 있었다. 보수 진영은 힐러리가 그 측근의 돈벌이를 도왔다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힐러리가 비호감 후보가 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메일 스캔들과 관련해선 힐러리가 직접 “실수였다”고 여러 차례 고개를 숙여야 했다. 비선(秘線) 측근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박근혜 대통령도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한·미 양국에서 대표적 여성 리더의 측근 정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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