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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현기자의역사항쟁지다시보기] 추모 발 길 줄 잇는 최익현 대마도 순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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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27 21:05:11 수정 : 2016-10-27 2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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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인 면암 최익현(1833∼1906) 선생이 일본 대마도로 유배 가는 과정을 그린 유배도가 최근 발견됐다. 이 그림으로 인해 선생을 다시 한번 기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

충남 청양군은 면암 선생을 그린 일본 대마도 유배도와 영정을 보관하고 있던 한 지역인사에게 보관증을 써준 뒤 그림을 넘겨받았다. 전문가들은 감정을 통해 유배도와 영정이 조선 말기 화가인 채용신(1850∼1941) 선생이 운영하던 미술서화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1932년 면암 선생의 일성록이 발간되던 시기 또는 그 이후로 제작 시기를 추정했다. 이 그림에는 선생 일행이 숭례문을 나올 때부터 대마도에 도착하는 과정이 한 장의 비단에 절반씩 나눠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그림 왼쪽에는 일본인이 끄는 인력거를 탄 면암 선생 뒤에 장남 최영조, 차남 최영학을 비롯해 임병찬, 임병대, 임응철, 최제태, 최영설, 최만식, 최전구, 이승회 등 10명이 뒤따르고 있다. 현재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는 과정을 한눈으로 볼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시 이즈하라초 오테바시 슈젠지에 있는 최익현(작은 사진) 선생 순국비.
그림 오른쪽에는 부산 초량역에 기차가 도착해 부산항에 이르러 면암 선생과 임병찬 선생이 조각배에 올라 일본 상선으로 옮겨 타고 오륙도를 거쳐 대마도로 향하는 모습이 나온다.

조선 후기의 의병장 최익현 선생은 1833년 12월 5일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다. 1868년 경복궁 중건과 당백전 발행에 따르는 재정의 파탄 등을 들어 흥선대원군의 실정(失政)을 상소했다. 이로 인해 관직을 삭탈당했다. 이후 일본과의 통상조약과 단발령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항일의병운동의 전개를 촉구하며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모았다. 그러나 순창에서 패하여 대마도에 유배됐다.

1906년 11월 순국한 선생의 유해는 백제 비구니가 건립했다는 슈젠지(修善寺)에 며칠 동안 안치되었다가 부산항으로 이송됐다. 슈젠지에는 이러한 인연으로 선생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1986년 8월 순국기념비가 건립됐다. 비의 전면에는 ‘大韓人崔益鉉先生殉國之碑’라고 새겨져 있다. 지금은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류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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