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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가을에 내린다. 가을에 비가 내린다. 어느 쪽이 더 맘에 드시는지. 비가 가을에 내린다는 쪽에 손을 든 분은 약간 짜증이 났을 것 같다. 모처럼 붉은 단풍들 사이로 그 혹은 그녀와 이도 아니면 아들과 딸과, 아내와 걷기로 했던 여정이 비 때문에 망가질 것 같아 아쉬운 분일 수 있다. 가을에 비가 내린다는 쪽을 선택하신 분, 감상적이다. 지나온 세월 속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과 같이 걷고 싶은 길일 수 있고, 당장 볼 수는 없지만 그리운 어떤 이를 떠올리는 더운 가슴을 지닌 분일 수 있다.

어제 만나고 온 황인숙 시인은 내달 초 10년 만에 새 시집을 낸다고 한다. 그 시집 교정지를 오늘 아침 미리 받았는데, 가을을 키워드로 검색하니 엉뚱하게도 ‘탱고’라는 시가 나온다. 그 전문은 이러하다. “붉고 붉은 단풍/ 우수수 떨어져/ 나무 주위를/ 파닥거리며 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히/ 어여쁨 뽐내며 파닥파닥/ 붉고 붉은 단풍/ 환희로 가득한 숲//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붉고 붉은 단풍/ 가슴 저며라, 사람인 나는” 참 쉽고 편하게 쓴 시처럼 보이는데 이 감성을 전달하는 과정은 그리 쉽지는 않았을 테다.

그리하여 지금 유튜브나 어디든 들어가서 아무 탱고 음악이나 틀어보시라.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온 대륙의 노동자들이 일과가 끝난 후 선착장에 모여 춤을 추면서 만들어졌다는 장르다. 반도네온의 가슴 적시는 선율의 질감도 그렇고, 시리게 현을 긋는 바이올린도 그렇고, 단순한 리듬도 좋다.

황인숙의 이 시 ‘또, 가을’은 어떤가. “온다, 온다, 오리라/ 이 순간 공포는 질겨라/ 어제까지도 여름이었는데/ 선들, 돌변한 바람에/ 삐걱/ 황량한 영원이 열리고/ 영혼은 닫힌다/ 맹렬하게, 달아나지도 못하고/ 몸서리치는 몸뚱이/ 전신 살갗이 곤두서고/ 발가벗겨진 뼈들이/ 영원의 폐허에 던져진다/ 아, 영원 속에서/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 이 소름 질겨라”

누구나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시는 아무나 쓸 수 없다는 걸 늘 절감하는 편이다. 허접쓰레기 같은 시들도 물론 많지만 시다운 시는 참 가슴을 적시고 힘들게 한다. 그들은 과연 후천적 노력만으로 그런 시를 쓸 수 있는 건지, 의아할 때가 많다. 머리로 쓴 시와 가슴을 움직이는 시는 다르다. 이승에서 제대로 시를 쓰는 자들은 분명 샤먼들이다. 내생을 믿지 않기에 이 생에서 나는, 그들을 절망하며 사랑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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