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봉되었던 물의 살가죽이 갈라지고
이따금 새들이 우편엽서처럼 날아오르는 곳
마른 밭을 갈던 노인의 등 뒤에서 봄은 연신 나동그라지고
너무 깊어 손닿지 않는 당신의 표정처럼
나는 여전히 가장 먼 아침인 것
논두렁이 꿈틀, 자운영이 붉게 엎질러지는 순간
김영남 시인 |
인용시 ‘저수지’를 쓴 홍일표 시인의 최근 시를 접한 독자는 난해해졌다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시 또한 차근차근 감각을 더듬어 따라 들어가면 시인의 역량이 보통이 아니고 구현한 시도 아름답다는 걸 느낄 것이다. 저수지의 이른 봄 풍경을 압축적이고 매우 인상적으로 묘사한 게 특장이다. 특히 “이따금 새들이 우편엽서처럼 날아오르는 곳”과 “마른 밭을 갈던 노인의 등 뒤에서 봄은 연신 나동그라지고” “논두렁이 꿈틀, 자운영이 붉게 엎질러지는 순간”의 표현은 압권이다.
김영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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