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영남의월요일에읽는시] 저수지

관련이슈 월요일에 읽는 시

입력 : 2016-10-31 01:21:38 수정 : 2016-10-31 01:21:3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홍일표(1958~)
대책 없이 큰 눈알이다 온종일 글썽이는 눈망울이다 몇몇 낚시꾼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물을 읽고 있지만 고작 물의 살점 몇 조각 떼어 가질 뿐이겠지만 차갑게 식은 저녁의 몸 안에 수백 번 죽어 깊고 아득해진 누군가의 노래가 있다

밀봉되었던 물의 살가죽이 갈라지고
이따금 새들이 우편엽서처럼 날아오르는 곳

마른 밭을 갈던 노인의 등 뒤에서 봄은 연신 나동그라지고
너무 깊어 손닿지 않는 당신의 표정처럼
나는 여전히 가장 먼 아침인 것

논두렁이 꿈틀, 자운영이 붉게 엎질러지는 순간


김영남 시인
최근 시에서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일반 독자는 물론이겠지만 일부 시인, 평론가들도 동조하며 시정되어야 할 작자들의 태도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시의 소통문제는 시인 또는 독자의 개별적인 문제이지 집단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소통문제를 포함한 기존 방식의 전복사가 주류인 예술사를 생각해보면 너무나 명백해질 것이다.

인용시 ‘저수지’를 쓴 홍일표 시인의 최근 시를 접한 독자는 난해해졌다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시 또한 차근차근 감각을 더듬어 따라 들어가면 시인의 역량이 보통이 아니고 구현한 시도 아름답다는 걸 느낄 것이다. 저수지의 이른 봄 풍경을 압축적이고 매우 인상적으로 묘사한 게 특장이다. 특히 “이따금 새들이 우편엽서처럼 날아오르는 곳”과 “마른 밭을 갈던 노인의 등 뒤에서 봄은 연신 나동그라지고” “논두렁이 꿈틀, 자운영이 붉게 엎질러지는 순간”의 표현은 압권이다.

김영남 시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