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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부실·불친절한 정부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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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31 01:22:06 수정 : 2016-10-31 01: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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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독감예방주사를 맞은 둘째 아이가 접종 다음날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오전 내 따끈하다 싶던 몸은 금세 38도를 훌쩍 넘었다. 예방접종 이후 고열은 첫 아이 때부터 워낙 많이 봐온 증상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오후 들어 아이는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더니 입술에 핏기가 사라지고 축 처져 졸린 듯 자꾸만 눈을 감았다. 일요일이어서 동네 소아과는 모두 문닫은 터라 조바심이 났다. 순간 자녀의 예방접종 이력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질병관리본부가 만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예방접종 도우미’가 떠올랐다. 


윤지로 사회부 기자
마침 ‘이상반응 바로알기’ 메뉴가 있어 들어가보니 인플루엔자(사백신)의 흔한 이상반응으로 국소반응(통증, 부기, 발적) 10∼64%, 발열(38도 초과) 5∼12%, 드문 이상반응으로 아나필락시스, 길랭-바레증후군, 눈호흡증후군 등의 설명이 달렸다. 그러나 난해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부모들의 의학 수준을 높게 평가한 것인지, 기자의 지식이 부족한 탓인지는 몰라도 도대체 구토와 설사, 처짐은 어디에 해당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아나필락시스는 ‘예방접종 직후 순환기 기능부전이 나타나고 기관지 연축, 후두 연축·부종 등으로 호흡곤란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음’이라고 부연설명이라도 있었지만, 길랭-바레증후군, 눈호흡증후군은 증상을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눈호흡증후군이라니, 아무리 아파도 그렇지 설마 눈으로 호흡을 할까.

이튿날 다른 질병은 어떻게 안내가 돼 있나 싶어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서 지카바이러스를 찾아봤다. ‘귀국 후 1개월간 헌혈을 금지하고 유행지역 방문자는 귀국 후 6개월 동안 임신을 미루고 성관계를 피하거나 콘돔을 사용하라’고 돼 있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성관계에 대해서만 별도 페이지를 만들어 성관계 형태, 사용도구 등에 따른 위험과 예방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었다. 조금 민망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지카바이러스는 숲모기에 물리거나 감염자와의 성관계로 옮는 게 대부분이니 당연한 일이다. 주제를 바꿔 아동학대 매뉴얼도 찾아봤다. 미국 보건복지부(HHS)는 ‘아동학대 및 방임 매뉴얼 시리즈’를 1970년대부터 세 차례 업데이트해왔다.

최신판은 2006년에 개정됐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다.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지 않는 경미한 방임부터 심각한 수준의 학대에 이르기까지 학대 종류가 상세히 열거돼 있고 학대받는 아동뿐 아니라 보호자의 의심스러운 행동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도 지난 4월 ‘유치원·어린이집 아동학대 조기 발견 및 관리대응 매뉴얼’을 내놨지만 내용의 구체성에서 미국 매뉴얼에 비할 바 못 된다.

이뿐인가. 세월호 사건, 9·12 경주 지진 같은 국가 재난·재해 상황에도 매뉴얼 문제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관료 사회에 매뉴얼·안내문 작성을 가욋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 것인지, 우리나라 매뉴얼은 둘 중 하나인 듯하다. 부실하거나 불친절하거나. 예방 접종으로 고열과 구토 등을 보인 그날 아이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대한민국 엄마라면 누구나 알 만한 육아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에는 질병관리본부 설명만큼 의학적이지는 못 해도 ‘우리 아이도 그런 적 있다’며 최소한 ‘알아들을 수 있는’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윤지로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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