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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애독서] 지성·감성·종교·예술을 하나로… 군인의 길 지평 넓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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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01 00:51:38 수정 : 2016-11-01 00: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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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와 사랑/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영 옮김 20대 초반, 사관생도 시절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을 60대 초반이 된 올해 봄에 문득 생각이 나서 밑줄을 그어가며 다시 읽었다. 40년이 지났는지라 책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나눈 대화의 내용은 희미해졌지만, 군인으로서의 쉽지 않은 생활 여정 속에서 나의 삶의 지평을 넓혀주었던 책이라서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1930년에 발표된 이 책은 ‘우정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두 주인공의 이름에서 암시되듯이 나르치스는 내면의 정신과 종교성을, 골드문트는 외형적인 예술가적 기질을 대변한다. 주인공들은 각자의 삶의 방식을 통해 완전성을 추구하였으며 생과 사, 정신과 본능 등에 대한 작가의 이원론적 사상을 대변하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자기실현과 수도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상돈 군인공제회 이사장
이 책의 첫 문장은 “마리아브론 수도원 입구에 들어서면 두 개의 둥근 기둥이 떠받치는 아치형 정문이 보이고, 그 앞의 길가에는 밤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는 풍경 묘사로 시작한다. 그것이 나에게는 ‘서울의 동북’에 위치한 화랑대(花郞臺) 정문의 모습과 이를 통과하면 서 있던 플라타너스 나무가 떠오르게 한다.

1970년대 육군사관학교는 3금(금연·금주·금혼)제도를 엄격하게 지켜 위반자에 대해서는 퇴교 조치까지 했는데, 중세의 수도원에서도 금욕생활을 하였으므로 사관생도 생활과 수도사의 생활은 비슷한 점이 있다. 

군인과 성직자는 인생 여정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인간의 생명을 다룬다는 면에서는 유사하다. 장교는 전장에서 부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평시에 강한 교육훈련과 수양을 하고, 성직자는 인간의 생명을 구원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힘든 수도생활을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친구여, 우리 둘은 태양과 달이며 바다와 육지이다. 우리의 목표는 서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것을 서로 보고 존경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한 나르치스의 말이 지금도 나의 귓가에 맴돈다.

그리고 골드문트의 기질을 가졌던, 육사에서 지(智)·인(仁)·용(勇)을 겸비한 후배들을 양성하다 이제는 고인이 된 나의 동기생 시인이 생각난다. 2011년에 나는 그의 추모 시비(詩碑)를 대성산(1175고지) 정상에 세웠는데, 그 시비에는 ‘대성산에 오르다’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육사 시절 꿈속에서 그와 함께 오르던 그 산, 반세기 전 우리들의 울음을 삼키던 그곳, 산처럼 영원한 소위의 땅인 대성산을 이번 겨울에 오르고 싶다.

이상돈 군인공제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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