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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바다만이 공허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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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03 14:00:00 수정 : 2016-11-02 20: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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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고성으로 ‘나 홀로 여행’
화진포에서 거진항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는 거진해맞이공원에 오르면 바다를 끼고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도로의 모습을 담을 수 있다. 왼편으로 울긋불긋 단풍 든 산세가, 오른편으로 시원한 바다와 파도의 흰 물거품이 다양한 색을 그려내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무더위를 날리는 시원한 바람을 맞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듯한데 벌써 바람이 불면 자연스레 몸이 움츠러든다. 아직 바람막이 옷 정도만 입고 다녀도 될 가을 날씨여야 할 11월 초인데 겨울이 온 듯 추워지기 시작하고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올해 얼마 남지 않은 가을 바람을 맞으며 꼭 한 번 둘러볼 만한 곳이 바로 강원 고성이다. 산과 바다, 호수를 지나치며 걷는 길이다. 누구에게나 감춰두고 싶은, 나만 누리고 싶은 장소를 꼽으라면 전국 여느 곳과 비교해도 빠지지 않을 만한 곳이다.
더구나 고성의 단풍은 조금만 있으면 끝물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단풍은 낙엽으로 변한다. 단풍과 낙엽의 분위기는 천지 차이다. 화려한 단풍이 ‘소녀의 웃음’이라면 색 바랜 낙엽은 ‘중년의 고독’과 같다. 그렇다고 꼭 단풍만 찾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고독이 혼자 떠나는 여행과는 어울릴 수 있으니 말이다.

‘소녀의 웃음’과 ‘중년의 고독’을 한껏 느끼기 위한 첫 발걸음은 화진포에서 시작해 거진항까지 이어진다. 해파랑길 49코스 중 일부다. 통일전망대가 속해 있는 해파랑길 마지막 50코스는 군부대의 허가 없이 걸을 수 없다 보니 사실상 마지막 구간이다.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만든 석호와 개미 허리 같은 모래사장을 사이에 두고 파도가 출렁이는 풍경을 먼저 내려다봐야 화진포의 진가를 알 수 있다. 화진포 전체 모습을 보려면 응봉을 올라야 한다. 김일성별장 옆으로 나있는 숲길을 따라 30분가량 오르면 응봉 정상이다. 오르막길이다 보니 숨이 좀 찰 수 있지만, 산을 올라 정상에 이르면 화진포에 왜 옛 남북 권력자들의 별장이 모여 있는지 금세 이해가 된다.
매가 앉은 형상과 비슷해 이름 붙여진 응봉(鷹峰)에서 바라보면 화진포의 내호와 외호, 동해, 섬 금구도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응봉에서 화진포 전경을 내려다보고 내려오는 길에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는 ‘화진포의 성’을 들르면 된다. 일제강점기 때 국내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실’ 운동을 시작한 셔우드 홀 박사의 별장이었다. 
화진포의 성. 광복 후 김일성이 별장으로 사용한 곳이어서 김일성별장으로 유명하다.
이승만별장에서 바라 본 화진포.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들어선 이 별장은 독일 건축가가 지어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독일 성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해방 후 38도 이북이다 보니 김일성이 별장으로 사용한 곳으로 김정일이 어린 시절 러시아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서 찍은 기록사진도 전시돼 있다. 물론 러시아 쪽에서 기증된 사진이다.
화진포의 이기붕별장.

김일성 별장 근처엔 해방 후 남측 권력자 중 한 명인 이기붕이 사용한 별장을 만나게 된다. 해방 후 첫 대통령 이승만 밑에서 권력을 휘두르던 그와 부인 박마리아가 사용했던 곳으로 애초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집이다. 이승만 별장은 김일성 별장과 호수를 사이에 두고 조성돼 있다. 호수 내 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승만 별장은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어 화진포 호수의 고즈넉함을 느끼기에 좋다.
한적한 동해안 포구마을인 초도포구.

화진포에서 북쪽으로 5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초도포구다. 고성엔 대진, 거진, 가진항 등 큰 포구들이 있는데 초도포구는 그에 비하면 매우 작지만 한적한 동해안 포구마을의 풍경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작은 포구 안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작은 배들은 아기자기한 풍경을 자아낸다. 초도 바로 앞에 있는 섬이 금구도다. 푸른 소나무와 황금색 대나무가 자라는 모양이 황금거북을 연상시켜 이름 붙여진 섬으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시신을 안장한 곳이라는 얘기도 전해진다.
초도 바로 앞에 있는 섬 금구도.

화진포에서 거진항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해오름 쉼터를 만날 수 있다. 큰 길로 가면 이곳을 만날 수 없다. 해안도로를 끼고 가야지만 이 길을 만나는데 바다를 품고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다. 해오름 쉼터에 잠시 차를 세우고 바다를 구경해도 좋지만, 길 건너편에 있는 거진해맞이공원으로 계단을 오르자. 가파른 길이지만 잠깐이다. 공원을 잠깐 거닐다 보면 바다를 끼고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도로의 모습을 담을 수 있다. 왼편으로 울긋불긋 단풍 든 산세가, 오른편으로 시원한 바다와 파도의 흰 물거품이 다양한 색을 그려낸다.

쉼터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거진항이다. 고성에서 가장 큰 항구로 물회 한 그릇은 필수다. 각종 잡어만 넣는 것이 아니다. 멍게와 해삼, 성게와 소라 등이 같이 버무려졌지만 비린 맛이 없고 더 개운하다. 여름에 느끼는 시원함도 있지만 가을에 느끼는 물회의 시원함 역시 일품이다.

고성(강원)=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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