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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고종의 비밀 정원 성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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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03 01:15:37 수정 : 2016-11-03 01: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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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19세기 말, 고종과 왕실 사람들이 자주 찾았던 비밀의 정원이 도성 안에 있었다. 서울 부암동에 있는 석파정과 성북동의 성락원이 그곳이다. 계곡이 깊고 수석이 맑으며 도성에서도 멀지 않아 세도가들이 자주 찾아 풍류를 즐기던 자연풍경식 정원이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석파정을 서울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으로 소개했고, 양의영은 ‘유북한산기’에서 귀한 사람들이 숨어지내며 수신하는 곳으로 설명했다. 성락원에 대해서는 도성사람들이 꽃구경하는 명소인 도화동이라 불렀다고 ‘동국여지비고’ 한성부 명승편에 전한다. 현재 이 정원들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서울시내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세월의 흔적이 비껴나간 듯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된 석파정은 원래 세도가 안동김씨의 일원인 김흥근의 소유였다. 흥선대원군이 이곳을 사랑하여 김흥근에게 팔기를 원하였으나 거절하자 일부러 고종에게 이 별장에서 하루 묵을 것을 청했다. 왕이 다녀간 곳을 신하가 소유할 수 없게 되자 이 별장을 대원군이 몰수하게 된다. 그 후 자신의 호를 ‘석파’라 짓고 정원의 이름도 석파정이라 고쳐 불렀다. 명승 제35호 성락원은 조선 철종 때 심상응이 경영했던 곳으로,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 이강공의 별저로 35년간이나 사용됐다. 망국의 왕족으로서 남다른 비애를 겪고 있었던 의친왕은 하루도 술을 거르지 않고 마셨다고 한다.

조선말 화가인 이한철의 ‘석파정도 병풍’(사진)을 보면 석파정은 지금보다 훨씬 큰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계류를 바라보며 앉은 사랑채, 안채, 별채가 화려한 상류계층의 건축형태를 보여준다.

성락원은 연못인 ‘영벽지’를 중심으로 계류 가에 추사 김정희 등 명망 있는 문사들의 각자가 새겨져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최근 영벽지 중앙에 자연암반을 그대로 쪼아 만든 반구형의 석조물을 확인했다.

이원호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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