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시인 박영근은 “꽃 떨어진 그 텅 빈 대궁에 빗물이 스쳐간다// 이제 나를 가릴 수 있는 것은 거센 바람뿐”이라고 ‘다시 11월’에 썼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몸을 가릴 수 있는 게 거센 바람뿐이라니, 참으로 모진 처지이다. 무성한 신록의 이파리들이 한껏 바람에 춤을 추며 생명의 권력을 과시하던 때는 한 시절에 불과하다. 그 이파리들은 모두 사라져야 할 운명이고 스러져 밟히는 신세다. 이제 와 뉘라서 벗은 몸을 삭풍에 감싸줄까. 11월의 숙명이다.
11월의 나무들을 바라보는 감성이 모두 이처럼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나희덕의 ‘11월’은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한다”고 보았다. 버림으로써 혹독한 겨울을 날 수 있는 자비를 얻기 때문일 터이다. 버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이 또한 11월의 길이다. 이성복은 ‘11월’에서 “비가 내리고 나는 세상의 젖은 몸 위에 ‘사랑한다’고 쓴다”고 쓴다. 비우고 젖은 몸이야말로 껴안아 체온으로 덥히기에 좋은 몸이다. 비울 때 비로소 그 텅 빈 고독에 투명하고 따스한 연민이 깃들 수 있다.
11월을 찬미하는 시인들도 있다. 나태주는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동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라며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라고 썼다. 이해인 수녀는 “11월의 청빈한 나무들처럼/ 나도 작별 인사를 잘 하며/ 갈 길을 가야겠”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수녀 시인의 청빈한 긍정은 쓸쓸함을 표백하지만, “늑골 뼈와 뼈 사이에서 나뭇잎 지는 소리”(배한봉) 들리고 “나무가 하늘에 기대어 우는 듯”(이성선)한 11월이 유령 같은 달임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남은 날들, 부디 무사히 건너가시길.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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