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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의월요일에읽는시] 없음으로 있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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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07 01:27:40 수정 : 2016-11-07 01: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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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1955~ )
사랑은 없음으로 주장한다
평화는 없음으로 피비린내나게
자유는 없음으로 더욱 크게.

자유는 없음으로 있음보다 화려하게
자유는 없음으로 있음보다 진하게
자유는 없음으로 있음보다……더욱.

그는 없음으로 그의 존재를 주장한다
그는 없음으로 소리친다
그는 없음으로 끌어당긴다
그는 없음으로 나를 병들게 한다.
그러므로 나 또한 없음으로 있기
없음으로써 풍요롭기
없음으로써 있음으로 가기
한사코 있으려고 하는 몸뚱어리를
없음을 향하여
돌려 세우기.


김혜순 시인의 시를 읽을 때면 필자는 세 가지의 자유로움을 느낀다. 첫째는 소재의 자유로움이다. 그녀의 시에는 시로 쓰지 못할 소재가 없다는 느낌이다. 전방위로 다룬다. 둘째는 발상의 자유로움이다. 어떤 소재를 만나더라도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으로 내용을 이끈다. 마지막으로 결과의 자유로움이다. 그녀의 시는 시도한 만큼 합당한 시적 성과를 낸다. 그만큼 태작 없이 시의 수준이 고르다.

김영남 시인
9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한 시인치고 김혜순의 시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의 시는 모던했다. 한때 미래파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시인들도 그들의 뿌리를 더듬어 가면 김혜순의 시로 연결되지 않을까 한다. 그만큼 그녀의 시는 형식과 방법론에서 거침없고 진취적이었다.

인용시 ‘없음으로 있음보다’는 그녀 주류 시에 비해 비교적 짧은 호흡의 시다. ‘부재가 존재를 더 깨우친다’라는 다소 관념적 내용을 매우 선명한 비유로 간결하게 제시했다. ‘사랑’ ‘평화’ ‘자유’ 등 추상어를 동원해 시가 드라이할 것 같은데 시적 기교로 잘 극복하고 여운까지 남김을 본다.

김영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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