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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최선의 나라, 최악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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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07 21:57:04 수정 : 2016-11-07 21: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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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국가’에서 역설한 정신은 정의
대립·증오 넘어 아레테의 나라가 돼야
“근대국가 생성의 역사는 말할 것도 없이, 그것 자체가 하나의 도덕사(道德史)이다.” ‘덕 이후: 도덕론 연구’에서 철학자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그렇게 적었다. 국가에 대해서는 물론 덕(德)에 대해서도 말하기 쉽지 않다. 정치학, 윤리학, 교육학 등의 고전적 교과서로 불리는 플라톤의 ‘국가’에는 흔히 ‘덕’으로 번역되는 아레테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아레테는 어떤 사물이나 존재의 훌륭한 상태 혹은 탁월한 상태를 뜻한다. 어떤 사물이 그 기능이나 구실을 잘할 때 아레테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훌륭한 탁월성을 발휘하기 위한 기본 조건의 하나는 정의다. 현실적으로는 올바르지 않은 방식으로 타인을 예속시켜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하는 강자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어떤 집단에서 그 구성원들이 서로 간에 올바르지 않은 짓을 저지른다면 함께 의미 있는 일을 모색하기 어렵다.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선생은 나라나 군대, 강도단이나 도둑의 무리, 또는 다른 어떤 집단이 뭔가를 공동으로 도모할 경우에, 만약에 그들이 자기네끼리 서로에 대해 정의롭지 못한 짓을 저지른다면, 그 일을 그들이 조금인들 수행해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오? (…) 어쩌면 그건 부정의가 서로 간에 대립과 증오 및 다툼을 가져다주나, 정의는 합심과 우애를 가져다주기 때문일 것이오, 그렇지 않소?”(‘국가’)

여기서 대립과 증오, 합심과 우애의 대조는 뚜렷하다. 즉 정의롭지 못할 때 아레테는 발현되지 못한다. 정의는 혼의 아레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훌륭하게 잘 사는 사람은 복을 받고 행복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반대의 결과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개인이나 집단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따라 완전하게 정의로운 나라가 최선의 나라이고, 완전히 부정의한 나라는 최악의 나라임을 논증한다.

‘완벽하게 좋은 나라’, ‘아름다운 나라’인 이상국가는 지혜, 용기, 절제 등 모든 덕목을 갖춘 정의로운 나라다. 그 구성원들이 저마다 타고난 본성을 잘 발휘하고 제 일을 잘하며, 아레테를 잘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나라다. 그런 나라의 통치자들을 플라톤은 “나라에 유익한 것이면 온 열의를 다해 하려 들되, 그렇지 못한 것이면 어떻게도 하려 들지 않을 것같이 보이는 사람들, 그 누구보다도 온 생애를 통해 그렇게 하려 들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며, 그런 통치자들은 “진정 그 이름값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참된 나라’ ‘건강한 나라’를 만든다. 그렇지 않은 경우 ‘염증 상태의 나라’로 전락할 수 있음을 ‘국가’는 일찌감치 경고한다.

물론 2400여 년 전인 플라톤 시절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강조했던 국가의 기본 정신은 여전히 의미심장한 참조 틀이 된다. 많은 국민이 국가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그 아픈 증상이 간절한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다. 대립과 증오를 넘어서 합심과 우애로 아레테가 잘 발현되는 그런 아름답고 건강하고 좋은 나라에 살고 싶은 것이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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